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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조경] 설계 전략 그리기
  • 이명준 (earsjune2@gmail.com)
  • 환경과조경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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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할 때 가장 먼저 그리게 되는 드로잉 유형은 아마도 다이어그램일 것이다. 설계가는 대상지의 여러 정보를 고려하며 설계 아이디어를 간단히 그려본다. 대상지의 자연, 문화, 역사, 경제, 사회를 포함하는 다양한 현황을 지도 위에 표시해보며 대상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부지의 바람직한 이용 방법을 합리적이면서도 창의적으로 상상하고 표현한다. 이러한 상상은 점차 진화하고 구체화되어 (이전 연재에서 살펴본)평면도나 입단면도, 투시도 형식으로 그려진다.

다이어그램은 사전적으로 어떤 것의 겉모습, 구조 혹은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단순화된 드로잉, 즉 도식schematic representation또는 그래픽 형식으로 무언가를 그리는 행위를 뜻한다.1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간단한 평면도나 입단면도, 투시도도 다이어그램에 포함된다. 하지만 조경 설계에서 다이어그램은 경직된 하나의 유형이라기보다 평면도, 입단면도, 투시도로 표현하기 힘든 요소를 도식화한 것을 광범위하게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보이지 않는 경관 요소, 움직임, 생태와 문화 프로그램, 그러한 요소 간의 관계, 시간에 따른 변화 등의 설계 전략을 시각화한 것을 다이어그램이라고 부른다(그림 1). 그러므로 다른 드로잉 유형과 달리 다이어그램은 경관의 겉모습과 반드시 닮아야 함을 전제하지 않는다. 설계안의 논리를 그림으로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다이어그램의 주된 임무다.

다이어그램과 유사해 종종 혼용되는 드로잉 유형으로는 맵핑mapping이 있다. 맵핑은 말 그대로 지도를 만드는 것 혹은 설계를 위해 새로 만든 지도를 의미한

.2 맵핑은 여러 경관 정보를 지도 형식으로 단순하게 나타낸 도식이라는 점에서 다이어그램에 포함된다(그림 2). 조경 설계에서 맵핑이라는 용어를 다이어그램만큼이나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조경에 땅을 다루는 작업이 많이 포함되기 때문일 것이다. 조경적인 다이어그램은 곧 맵핑인 셈이다. 어쩌면 조경 설계는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내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미국 모더니스트의 다이어그램

조경 다이어그램과 맵핑을 광범위하게 생각한다면, 그 시작은 드로잉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연재(환경과조경20193~5월호)에서 다룬 켄트의 드로잉, 즉 투시도 형식에 마운드 조성을 위한 지형 변경 사항을 점선으로 그려 넣은 드로잉이나 렙턴이 그린 입단면도는 오늘날의 다이어그램과 닮은 구석이 있다. 옴스테드도 조경 설계를 위해 다이어그램을 남겼다(그림 34).

하지만 본격적으로 다이어그램이 등장한 때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모더니스트, 즉 개릿 엑보Garrett Eckbo(1910~2000), 제임스 로즈James C. Rose(1913~1991), 댄 카일리Dan Kiley(1912~2004)의 드로잉에서였다. 이들은 클라이언트를 비롯한 다른 누군가에게 설계 전략을 보여주기 위해 다이어그램을 공들여 그리기 시작했다. 설계 과정에서 다른 드로잉 유형과 함께 다이어그램을 중요한 시각화 방식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엑보는 식재 계획을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했다(그림 5). 평면도 형식의 이 드로잉을 다이어그램이라 부르는 이유는 식재 정보를 간단한 기호로 시각화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조경 평면도에서 식재의 겉모습이 사실처럼 보이도록 그려졌다면, 엑보는 식재 유형별 형태와 질감 등의 특성을 간단한 기호로 환원해 표기했다. 물론 이제 평면도에서 나무는 정면을 그리는 플라노메트릭이 아닌 완벽한 탑뷰로 시각화되고 있다. 수종의 복잡한 정보를 간단한 규칙으로 나타내 어떻게 공간에 배치할 것인지 간결하면서도 잘 읽히게 하는 것이다.3 ...(중략)...

 

환경과조경 374(2019년 6월호수록본 일부

 

1. https://en.oxforddictionaries.com/definition/diagram

2. 나디아 아모로소는 드로잉 유형을 분류할 때 다이어그램과 맵핑을 한 범주로 본다. Nadia Amoroso, “Representations of the Landscapes via the Digital: Drawing Types”, in Representing Landscapes: Digital , Nadia Amoroso, ed., London: Routledge, 2015, pp.4~5. 또한 안드레아 한센은 “지도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다이어그램의 유의어”이며 두 유형이 “복잡한 것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로 추상화하거나 단순화하여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닌다”고 말하면서, 두 범주를 분리하기보다 혼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Andrea Hansen, “Datascapes: Maps and Diagrams as Landscape Agents,” in Representing Landscapes: Digital , p.29. 배정한은 다이어그램의 형식적 유형의 하나로 맵핑을 포함시키며, 조경진은 다이어그램이 대체로 장소와 관련이 있거나 없을 수도 있지만 맵핑은 구체적 장소와 반드시 관련된다고 본다. 배정한, “현대 조경설계의 전략적 매체로서 다이어그램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34(2), 2006, p.102; 조경진, “환경설계방법으로서의 맵핑에 관한 연구”, 『공공디자인학연구』 1(2), 2006, pp.77~78. 장용순은 건축 다이어그램을 보이지 않는 것과 복잡한 관계를 사고하는 도구라고 보며, 현대적 다이어그램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네트워크, 동선, 인프라를

보여주는 연결적 다이어그램, 둘째는 조닝과 프로그램 배치를 보여주는 집합론적 다이어그램, 셋째는 공간 데이터를 시각화한 데이터스케이프 혹은 시간에 따른 변화와 잠재성을 보여주는 변이적 다이어그램이다. 또한 이러한 현대적 다이어그램 이전에는 구상적 다이어그램이 있었다고 하면서, 여기에 평면도, 단면도, 입면도, 투시도를 포함시키고 있다. 장용순, 『현대 건축의 철학적 모험: 01 위상학』, 미메시스, 2010, pp.117~145.

3. Dorothée Imbert, “The Art of Social Landscape Design”, in Garrett Eckbo: Modern Landscapes for Living , Marc Treib and Dorothée Imbert ed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7, pp.152~154.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가천대학교와 원광대학교,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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