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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도시 평양, 눈으로 걷기] 평양의 오아시스, 공원과 유원지
  • 이선 (syee@nuch.ac.kr)
  • 환경과조경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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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루토늄, ICBM. 우리나라 국민만큼 이러한 단어에 관한 정보를 자주 듣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북한 관련 뉴스 기사는 대부분 핵과 관련된 내용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은 우리 국가와 국민의 안위에 직결되는 것이고, 정치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핵이나 미사일, 삼대 세습 등 정치적 주제를 제외하고는 북한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피자와 스파게티만 먹어보고 이탈리아 음식 전체를 평가할 수 없는 것처럼, 핵무기와 미사일만으로는 북한을 다 알 수 없다.

작년 봄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이후, 평양냉면이 다시금 인기몰이를 했다. 평양냉면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음식이고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평양이 왜 냉면으로 유명해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조선의 민속전통은 평양냉면, 평양온반, 평양숭어국과 어복쟁반 등을 평양의 대표 음식으로 소개하는데, 이는 모두 주변 지역에서 나온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이다. 조선 후기의 풍속과 연중행사를 정리한 동국세시기는 메밀로 만든 냉면 중에는 평안도의 면이 가장 좋다고 했고, 일제 강점기의 조사에 따르면 평안남도는 좁쌀과 수수, 메밀 등을 전국에서 가장 많이 심는 지역이다. 지역의 자연환경으로 인해 곡물로 만든 음식이 평양의 대표 음식이 된 것이다.

우리와 같은 자연환경과 민속 문화를 가진 북한의 일상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생활 속 벌어지는 일과 상황이 북한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북한에도 최고급 명품을 파는 호화 백화점이 있으며, 부동산 투기가 성행하고 미세 먼지로 골머리를 앓아 공기 정화 소독기(공기 청정기)의 개발과 판매가 늘고 있다. 지식 분야도 다르지 않다. 북한의 최고 대학이라 일컫는 김일성대학교의 논문집을 살펴보면, 북한 산천의 생태 환경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자부터 최첨단의 기술력을 쌓고자 애를 쓰는 기술공학자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신의 연구 분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그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그간 북한을 편협한 시각으로만 바라봤다. 정치적 색안경을 쓰고 북한을 바라보면 단색이지만, 색안경을 벗으면 다채로운 빛깔의 속살을 볼 수 있다. 최근 남북 관계와 주변국들의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평양에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나 이념의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념적 색깔을 걷어낸다면, 평양의 새로운 면모를 찾아낼 수도 있다. 평양이라는 도시에 중첩된 여러 층위를 한 꺼풀씩 벗겨내며 평양을, 그리고 북한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가 온 것이다.

 

북한의 수도, 평양

수년 전 중국의 칭다오 시민을 대상으로 베이징, 도쿄, 서울, 평양 등 네 도시의 관광 이미지를 비교 분석한 논문1이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평양은 다른 세 도시에 비해 인지적 이미지와 정서적 이미지2가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 논문은 중국 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이기 때문에 평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라 할 수 있다. 물론 논문의 결과가 평양의 현재 이미지에 관한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평가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때 중국인들이 평양을 천하제일강산이라 칭했지만 이제는 그 평이 무색해졌다. 북한이 오랫동안 자초해온 고립이 도시의 모습도 바꿔 놓았다. 소프트웨어가 바뀌니 하드웨어도 바뀐 셈이다.

평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역사 문화가 중첩되면서 도시의 성격과 품위도 바뀌었다. 하지만 평양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문화의 층위는 매우 두텁다. 평양은 한 나라의 도읍지로 번성했으며 물산이 풍부한 상업 도시로도 유명했다. 또 명승고적이 많고 풍류 넘치는 도시로서 누구나 한 번쯤은 유람하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근래에는 우리와 체제와 이념이 달라 끊임없이 부딪혔으나 누군가에게는 꿈에 그리는 그리운 고향 땅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평양은 이념에 갇힌 도시였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삼대 세습에 넌더리를 내고 그들의 체제와 이념에만 붙잡혀 정작 그들이 사는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에는 관심이 없었다. 북한의 주민이 먹고 일하며 쉬고 잠드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통제와 구속이 많은 평양 시민에게 공원은 일종의 오아시스다. 평양 시민들이 여가를 보내는 장소인 공원을 통해 그들이 어찌 살아왔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평화와 화해라는 거대 담론이 필요치 않다. 소시민들에게는 이념보다 일상의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3(20195월호) 수록본 일부

 

1. 남려영, “북경 서울 도쿄 평양 관광이미지 비교분석 연구중국 칭다오 시민을 대상으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2.

2. 이 연구에서 인지적 이미지는 관광지 자체의 매력 혹은 자원 등 이미지를 구성하는 일련의 속성에 대한 평가이며정서적 이미지는 전체적이거나 구체적인 속성을 평가함으로써 얻게 되는 정서적 반응을 의미한다.

 

이선은 충남대학교 임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식생 및 입지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자연과학자로서 인문학과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한국전통조경식재: 우리와 함께 살아 온 나무와 꽃(2006), 한국의 자연유산(2009), 우리 자연유산 이야기(2012), 풍류의 류경, 공원의 평양(2018) 등이 있다. 최근에는 정원사를 위한 라틴어 수업(2019)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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