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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는, 조경] 풍경을 그리는 드로잉
  • 환경과조경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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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West 8 and Iroje et al., Healing: The Future Park,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 2012

 

조경이 다루는 대상, 즉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우리말 경관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풍경이나 풍경화를 가리킨다. 그래서인지 공간을 디자인하는 조경의 인접 분야인 건축과 도시설계의 드로잉과 비교해보면 조경 드로잉은 녹색의 자연으로 가득한 풍경의 이미지를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그림 1). 특히 설계공모 제출물 중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그래픽 소프트웨어로 공들여 생산한 이미지에는 조경의 자연 애호(biophilia)경향이 잘 드러난다. 설계가가 고안한 경관을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것처럼 그려낸 이러한 이미지는, 풍경화의 형식과 대체로 유사해 조경 드로잉에 익숙하지 않은 누구라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효율적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이처럼 풍경화 형식으로 그려진 드로잉을 투시도라고 부른다. 물론 첫 번째 연재 (『환경과조경20191월호)에서 말했듯, 선형 원근법에 기반한 투시도는 엄밀히 말해 평면도와 입단면도 같은 투사 드로잉 유형에 속한다. 다만 조경의 역사에서 투시도는 선형 원근법을 느슨하게 적용해 온 경향이 있고 이러한 드로잉 유형은 정원 설계의 양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기도 했기에, 주요 드로잉 유형 중 하나로 다룰만하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에 유행한 풍경화식 정원 설계에서 투시도는 주요한 드로잉 유형으로 등장했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17세기까지 정원 설계에서 평면도와 입단면도가 주로 이용됐다면, 18세기 영국에서는 정원을 설계할 때 풍경화와 비슷한 스케치, 말하자면 투시도를 빈번히 이용하기 시작했다.1 전자가 과학적 도구성에 기반한 드로잉 유형이라면, 후자는 상대적으로 예술적 상상력이 강화된 시각화 방식이다. 물론 17세기에도 투시도는 경관을 시각화할 때 유행했다. 하지만 18세기에 이르러 바라보는 지점이 버드 아이 뷰, 즉 새의 시점에서 사람의 눈높이로 내려온다. 인간의 자연 경험을 시각화하기 위한 시도는 조경 드로잉뿐만 아니라 회화에서도 동시에 나타난 현상이었다.2


시점이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선형 원근법에서 풍경의 묘사가 보다 자유롭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드로잉의 변화는 정원 설계의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지난 연재(환경과조경20193월호)에서 살펴본 프랑스 정형식 정원의 엄격한 기하학적 질서, 즉 직선의 중심축을 따라 마지막에 위치하는 소실점으로 인간의 시선을 이끌어가는 대신에 이제 곡선(serpentine line)이 정원 조형의 원리가 되었다. 방문객은 곡선형의 길을 걸어가면서 식재나 점경물에 가려졌다 다시 나타나는 일련의 풍경의 변화를 경험하게 됐다.3몇몇 전망점은 풍경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기에 이 시기의 정원을 풍경화식 정원(landscape garden)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풍경화식 정원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스투어헤드(Stourhead)에는 17세기의 역사적 풍경화가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1600~1682)아이네이아스가 있는 델로스 섬의 풍경(Landscape with Aeneas at Delos)의 구성과 유사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점이 있다. 이러한 정원에서의 경험을 그려내는 데는 평면도나 입단면도보다 느슨한 투시도가 적합했던 것이다. ...(중략)...

 

* 환경과조경 372(20194월호) 수록본 일부

 

각주 정리

1. 투시도는 건축 드로잉의 역사에서 20세기 초반까지도 평면도, 입단면도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건축사가 배형민은 20세기 초반까지도 아카데미에서는 투시도가 중요하지 않았고 실무에서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수단으로 주로 이용되었다고 본다(Hyung Min Pai, The Portfolio and the Diagram: Architecture, Discourse, and Modernity in America, Cambridge, MA: The MIT Press, 2002, p.29). 제임스 코너 역시 건축 드로잉에서 투시도가 평면도나 입단면도보다 열등하게 여겨졌다고 말한다. 전자가 건축의 이념을 표상하는 존재론적 드로잉으로 간주된 반면, 후자는 종이에 행하는 단순한 표현 정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James Corner, “Representation and Landscape: Drawing and Making in the Landscape Medium”, Word & Image: A Journal of Verbal/Visual Enquiry 8(3), 1992, p.255).

2. John Dixon Hunt, Greater Perfections: The Practice of Garden Theory,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00, p.42; John Dixon Hunt, The Figure in the Landscape: Poetry, Painting, and Gardening during the Eighteenth Century,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9, pp.201~204. 

3. 영국의 풍경화식 정원 설계에서 정원의 모델은 자연이었고, 곡선은 자연의 형태를 표현하는 언어로 간주되었다(William Hogarth, The Analysis of Beauty, Ronald Paulson, ed.,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7).

 

이명준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경 설계와 계획, 역사와 이론, 비평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사 학위 논문에서는 조경 드로잉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대 조경 설계 실무와 교육에서 디지털 드로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고, 현재는 조경 설계에서 산업 폐허의 활용 양상, 조경 아카이브 구축, 20세기 전후의 한국 조경사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다. 가천대학교와 원광대학교,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조경비평 봄’과 ‘조경연구회 보라(BoLA)’의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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