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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새 광화문광장에 관한 풍문들
  • 최정민 (jmchoi@scnu.ac.kr)
  • 환경과조경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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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 자신의 밀실에서만은 살 수 없어요. 그는 광장과 이어져 있어요.” _ 최인훈의 ‘광장’ 중 


우리는 미술 시간에 풍경을 스케치하러 경복궁에 가곤 했다. 같은 교복을 입은 우리는 서로 다른 장소를 그렸다. 우리는 동쪽 문으로 들어가고 나왔다. 그곳이 정문인줄 알았다. 한글로 ‘광화문’이라고 쓰인 대문은 늘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앞은 광활한 16차선 대로와 마주하고 있었다. ‘광화문’과 ‘광장’은 전혀 관련이 없었다.

교보문고는 지적 피난처였다.『 조경학개론』을 거기서 샀다. 그무렵 동십자각 인근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교보문고에서 동십자각으로 가는 길은 미국대사관 뒷길이었다. 그 길이 삼청동에서 청계천으로 흐르던 물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세종대로는 늘 질주하는 차들로 가득하고, 인도는 철창을 단 버스와 무장한 전경들이 점유하고 있었다. 내가 다닌 길은 일종의 피마길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교실에서 “서양에 광장이 있다면, 동양에는 길이 있다”고 배웠지만, 광화문에는 광장도 없고 길도 없었다. 차량이라는 밀실은 넘쳐났다. 역사적 장소를 밀실로 점령당한 우리들은 그 사실조차도 자각하지 못했었다. 정치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난폭한 시절이었다. 그 난폭함을 중앙분리대의 은행나무가 중화하고 있었다. 지금도 해마다 가을이면 광화문광장에 간다. 학생들과 함께 간다. 북촌과 경복궁, 광화문광장을 거쳐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역사 공간 루트를 답사하는 일정이다. 2009년에 광장이 조성되고 광화문이 열린 덕분이기도 하다. 밀실들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아쉽다. 광장에서는 광화문으로 가기 어렵고, 광화문에서는 광장으로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가 바로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장은 세종문화회관에서도, 미국대사관에서도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중앙분리대”라고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주요 고비마다 이 장소에 모였다.

 

“광화문과 광장이 연결되면 참 좋겠다.” 이곳을 답사할 때마다 학생들과 나누던 이야기다. 이것만으로도 광화문 앞 공간을 재구조화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지 않은가.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다. 꽤 오래전부터, 꽤 많은 사람이 소망하고 궁리해 왔다. 그 궁리들을 모아 실행하려는 권력이 나타났다.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설계공모’가 열린 것이다. 그 동인이 정치적 의도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도시 공간 구현 사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간의 생산과 소비에는 권력과 계급, 정치, 경제 같은 힘들이 관계한다.1 조선의 건국과 함께 한 ‘주작대로’, 조선 후기의 ‘육조전로六曹前路’, 일제 식민지기에 왜곡된 ‘광화문통光化門通’, 군사 정권 시대의 16차선 세종대로, 2009년에 조성된 현재의 광화문광장 등은 모두 권력과 정치의 산물이다. 다만 새 광화문광장은 역사성을 회복하는 장소이면서 시민들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소망을 담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 2019년 1월 21일, 설계공모의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이순신·세종대왕 자리 옮기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설계 당선작 발표”2라고 즉시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들이 쏟아졌다. “‘이순신’ 빼고 ‘촛불’이라니요”,3 “이언주 ‘박원순 뭐길래 세종대왕·이순신 동상 치우나’”,4 “물구나무서는 이순신장군?…‘광화문광장’ 길을 잃다”,5 “이언주 ‘박원순, 대권놀음 빠져 광화문 광장 좌파 취향 훼손’”6 등이 그것이다. 외부 공간 설계가 이렇게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톱뉴스가 되었던 적이 있던가.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_ 최인훈의 ‘광장’ 서문 중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동상은 치워지나 

가장 먼저 나돈 풍문은 “세종대왕·이순신 동상 치운다”7는 것이다. “이순신장군이 물구나무선다”8는 풍문도 돌았다. 이를 들은 이는 “우리의 가장 빛나는 역사적 유산의 상징을 박 시장이 뭔데 함부로 치우냐”9고 강력하게 비난한다. 풍문의 지층은 점점 두터워진다. 

당선작 ‘깊은 표면Deep Surface’은 주작대로를 계승하고 북악산으로 열린 옛 경관의 복원을 위해 세종대왕·이순신장군상 이전을 제안한다. 그분들이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동상이라는 서구적 모뉴먼트를 그대로 두고 주작대로를 계승하고 옛 경관을 복원한다는 것은 설계자의 양심에 반하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서구적 모뉴먼트가 시선을 지배하는 공간을 대한민국의 대표 역사 경관으로 내세우는 민망함을 피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당선작은 수상작 10팀(본상 5팀, 가작 5팀) 가운데 유일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두 동상의 이전을 제안한다. 세종대왕상은 세종문화회관 옆으로, 이순신장군상은 옛 삼군부 터로 이전하여 동상과 공간적 맥락의 연계를 모색한다. 두 동상이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를 수긍할 수 있는 공간적 맥락을 만들려는 것으로 이해된다. 풍문처럼 세종대왕·이순신장군상을 치우는 것이 아니고, 이순신장군상을 물구나무 세우는 것도 아니다. 역사적 유산의 상징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동상과 역사적, 공간적 맥락을 결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이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을 그렇게 존중하고 아낀다면, 지금 동상처럼 이순신장군이 왼손잡이인지, 삼도수군통제사가 왜 15m 높이 기둥 위에 위태롭게 서서 매연을 뒤집어써야 하는지, 세종대왕은 왜 이순신장군 뒤에 앉아 있어야 하는지, 이분들은 왜 모두 경복궁을 등지고 있어야 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중략) 

 

1. Lefebvre, H., The Production of Space, BlackwellPublishers, 1991.

2. 권영은, “이순신·세종대왕 자리 옮기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설계 당선작 발표”, 「한국일보」 2019년 1월 21일.

3. 정지섭, “이순신’ 빼고 ‘촛불’이라니요”, 「조선일보」 2019년 1월 22일.

4. 김은빈, “이언주 ‘박원순 뭐길래 세종대왕·이순신 동상 치우나’”, 「중앙일보」 2019년 1월 23일.

5. 정우교, “물구나무서는 이순신장군?…‘광화문광장’ 길을 잃다”, 「일간투데이」 2019년 1월 23일.

6. 김도형, “이언주 ‘박원순, 대권 놀음 빠져 광화문 광장 좌파 취향 훼손’”, 「아주경제」 2019년 1월 23일.

7. 4번 기사

8. 5번 기사

9. 4번 기사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최정민은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설계 실천과 교육 사이의 간극을 고민 중이다. 대한주택공사에서 판교신도시 조경설계 총괄 등의 일을 했고, 동심원 조경기술사사무소 소장으로 다양한 프로젝트와 설계공모에 참여했다. 제주 서귀포 혁신도시, 잠실 한강공원, 화성 동탄2신도시 시범단지 마스터플랜 등의 설계공모에 당선되었다. 조경비평 ‘봄’ 동인으로 현실 조경 비평을 통해 조경 담론의 다양화에 기여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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