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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광무11년 7월 31일 한성, 모든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 이수학 (quercus965@gmail.com)
  • 환경과조경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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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광화문광장을 생각할 때 밀려오는 난감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장소 부정합성에 따른 무기력증을 동반한 직업병에서 기인한 것인지, 소실된 장소가 주는 망각과 삶의 표피의 간극에서 발생한 상실감을 동반한 우울증인지 가늠할 수 없어 스스로에게 몇 가지 사소한 질문을 놓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헌법이 말로 규정한 대한민국이라는 실체에 대한 정의라면 멀리 청와대와 정부청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세종문화회관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작동케 하는 정부와 문화가 있는 공간적 실체다. 광화문광장은 그 중심에 있다. 그것이 설령 조선 시대 오백 년의 역사적 공간과 중첩을 이룬다 하더라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의 광장 또 앞으로의 광장 어디에 임시 정부의 법통과 4·19의 기억이 있는가. 조선조 오백 년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역사로서 남아 있으면 아니 되는가. 이순신장군상이 가진 불순한 의도를 알면서 굳이 세종대왕을 앉히고, 월대를 넓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그 모든 것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면 이해하겠다. 광장은 원래 정치적 공간이다. 그들의 정치야 여전히 밀실에서 이루어지지만 인민2의 정치는 광장에서 이루어진다. 촛불이 그랬고, 명박산성이 그랬고, 6·10이 그랬고, 4·19가 그랬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광장이 아니었을 때도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민주주의가 광장에서만 가능하다는 논거는 성립할 수 없고, 민주주의는 어디서고, 어느 때고 작동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한다.

다시 얘기하자. 광장은 정치적 공간이나 광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굳이 광장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문제가 광장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묻게 된다. 광장 안의 문제라고 하면 광장의 형식과 기술적 해결이 문제가 될 것이고, 광장 밖의 문제라면 광장의 존재 이유와 인민의 합의가 아닐까. 광장 안의 문제는 경관이나 프로그램, 교통 같은 기술적 문제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광장은 그릇과 같아야 한다. 거기에 정치가 담기든, 축구공이 담기든, 노란 종이배가 담기든, 성조기가 담기든, 광장은 그 모두를 담는다. 내용이 정치냐 문화냐의 차이가 있을 뿐 광장 자체가 어느 한 시대의 정치색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은 촛불도 마찬가지다. 내용물이 흘러 쏟아지지 않게 그릇을 만들면 될 일이지 그릇에 광어회를 그려 넣거나 감자탕을 그려 넣고 배불리 드시라고 얘기하는 경우는 없다. 그러니 광장은, 그 형태나 형식은 광장 밖의 문제를 공간으로 풀어 수용하나 광장 밖의 문제에 갇혀 넘어서지 못한다. ...(중략)

 

1. “하지만 1907년 고종이 강제퇴위 당한 직후 일본의 압력으로 설치된 성벽처리위원회에 의해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면서 도성은….”, “내각령 제1호, <성벽처리위원회에 관한 안건> 제1조 성벽처리위원회는 내부, 탁지부, 군부 세 대신의 지휘 감독을 받아서 성벽을 헐어 철거하는 일과 그 밖에도 이와 관련한 일체 사업을 처리한다. …제5조 본 영은 반포일부터 시행한다. 광무11년 7월 30일 내각총리대신 훈2등 이완용”, 서울역사박물관 편, 『서울 한양도성』, 서울역사박물관, 2015, p.54 중.

2. 1919년 4월 11일 제정된 임시정부법령 제1호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 사용한 용어다.

 

* 환경과조경 371호(2019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이수학은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이원조경에서 4년 동안 일했다. 프랑스 라빌레뜨 건축학교와 고등사회과학대학원이 공동 개설한 ‘정원·경관·지역’ 데으아(D.E.A.) 학위를 받았고, 2003년부터 아뜰리에나무를 꾸리고 있다. www.ateliernamoo.x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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