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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서재]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윤정훈 (hoons920@daum.net)
  • 환경과조경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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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혼자 떠나는 제주 여행을 앞두고 있을 당시 나는 제주스러운경관에 목말라 있었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제주의 자연을 보고 오겠다며, 마우스 스크롤을 바득바득 내리면서 수많은 여행자들의 블로그를 기웃거리고 있을 때, 지인이 사진가 김영갑의 갤러리 두모악을 추천했다. 걸핏하면 제주도로 훌쩍 떠나곤 했던 그는 꼭 가 봐야 하는 곳이라며 나를 부추겼다. 사진에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체질이고, ‘제주도까지 가서 사진이나 보고 올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에 미적거렸지만, 계획한 목적지가 외진 숲, 오름 같은 것들뿐이어서 한번쯤은 쉬어 가자는 마음으로 두모악에 들렀다. 폐교를 개조한 작은 갤러리에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제주의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뭍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섬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지만, 김영갑은 동경하다 못해 그 풍경에 홀려 육지를 떠나 섬 토박이들 틈에서 살았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그가 루게릭병으로 죽기 전 남긴 마지막 책으로, 사진 뒤켠에 오래된 필름처럼 쌓여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다. 김영갑의 사진은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도의 자연을 고스란히 담는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빛, 바람, , 온도, 습기가 형형한 사진은 한 장 한 장 오랜 기다림으로 만들어졌다. 김영갑은 한 장소가 가장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하루 반나절, 며칠씩 기다리기도 하고 같은 곳을 몇 번이고 갔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 안개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강렬한 그 순간을 위해 같은 장소를 헤아릴 수 없이 찾아가고 또 기다렸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아니라 대자연이 조화를 부려 내 눈앞에 삽시간에 펼쳐지는 풍경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 한순간을 위해 보고 느끼고, 찾고 깨닫고, 기다리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다.”2 긴 기다림이 담겨 있는 탓인지 그의 사진 앞에서는 자꾸만 오래 머무르게 된다.

 

김영갑은 6:17 비율의 파노라마 프레임을 고수했다. 중앙에는 지()평선, 위는 하늘, 밑은 초원(바다)인 그의 사진은 제주를 닮아 낮고 평평하다. 두모악을 다녀온 다음날, 버스 정류장을 찾아 걸으며 작은 오름 앞을 지나갈 때였다. 야트막한 오름 앞으로 온 천지 연보라색 갯무꽃이 쏟아져 있었고, 때마침 바람도 적당히 불었다. 넓게 펼쳐진 그 초원을 보며 내 시야의 폭이 한 뼘만이라도 더 넓었으면 했다. 지평선을 따라 길에 늘어진 풍경을 보며 김영갑이 왜 파노라마를 고집했는지 수긍하고, 이곳이 오래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의 사진은 그리운 감정을 몰고 온다. 사진 속 순간 이 너무 아름다워서, 어떤 곳은 사라져 더 이상 볼 수 없어서다. 그의 작품이 한 장의 사진 그 이상인 것은 제주의 오랜 경관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번 제주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경관설계 국제공모수상작을 정리하면서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제주도의 경관은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떠올렸다. 있는 그대로가 가장 좋지만 이미 훼손된 주상절리대 일대에 필요한 것은, 프레임 속 풍경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한 장의 사진처럼, 주상절리대 본연의 경관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어떤 세심한 장치일지도 모른다. 낮은 자세로 주상절리대의 근원적 풍경으로 안내한다는 당선작의 내용을 떠올리며 이들이 앞으로 어떤 프레임을 제시할지, 그 속에 담긴 경관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그때의 내 몫은 풍경 속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다릴 줄 아는 인내일지도.

 

1.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휴먼앤북스, 2013.

1. 위의 책, pp.18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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