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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
  • 환경과조경 2018년 9월

긴 방학을 마무리하는 주에는 늘 개강 증후군이 밀려온다내가 가을 학기를 맞을 때 겪는 스트레스의 중심에는 서양조경사가 있다제법 경험이 쌓여 이제는 서양조경사 15주 강의에 밀도가 생기긴 했지만고백하건대 나는 내 강의 구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대 정원에서 시작해 중세 정원이탈리아 르네상스 정원, 17세기 프랑스 형식주의 정원, 18세기 영국 풍경화식 정원 순으로 살펴오다 종강이 다가올 무렵에야 19세기 도시공원의 발명과 조경의 탄생을 다루는 나의 (그리고 대다수 학교의 통상적인조경사 구성에는 모순이 적지 않다.

 

근대 산업 도시의 사회 문제를 공간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전문 직능(profession)이자 학문 분과(discipline)로 새롭게’ 시작된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의 역사를 왜 전근대의 정원 프레임으로 읽어야 하는가.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는 랜드스케이프 가드닝과의 절연을 선언한 명명이자 전근대의 공간 질서를 거부한 시대정신의 산물이었다고 주장하면서정작 우리는 왜 정원 양식과 문화를 중심에 놓고 조경사를 배우나요?”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몇 년 전부터 학기 초반에 조경 태동기의 도시사회사를 먼저 다루고 이 근대기의 정신을 틀로 삼아 고대부터 현재까지 도시경관공원광장가로공공 공간정원의 역사를 각론으로 편성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지만이번 방학에도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고 벌써 개강이 코앞이다.

 

자주 인용되는옴스테드가 파트너 보에게 쓴 편지한 구절이다. “이 비극적 명명 때문에 늘 괴롭다… 랜드스케이프는 좋은 단어가 아니다아키텍처도 좋지 않다둘의 조합도 마땅치 않다가드닝은 이보다 더 못하다.” 여러 문헌과 자필 서신에 기록되어 있듯옴스테드는 새로운 직능명 랜드스케이프 아키텍트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경관과 건축을 함께 묶은 명칭에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조경의 초기 주창자들은 왜 이 신조어를 받아들인 것일까아직 여러 논쟁이 진행되고 있지만랜드스케이프 가드닝/의 전통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정신과 도시의 변혁에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에서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조셉 디스폰지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옴스테드는 프랑스어에서 이미 19세기 초부터 도시 공간과 구조의 개선을 담당하는 전문 직능 명칭으로 쓰인 아르시텍트 페이자지스트(architecte paysagiste)(영어의 landscape architect에 해당)를 알고 있었고그 직능의 역할과 정체성이 뉴욕의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환경과조경』 2015년 3월호, 2016년 4월호 에디토리얼 참조)찰스 왈드하임은 옴스테드는 건축의 권위를 차용하는 것이 일반 대중에게 새로운 분야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또 이 새로운 분야가 주로 식물이나 정원과 관련된다고 오해되는 경향을 완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이런 맥락에서 보자면탄생기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곧 조경의 사명은 도시(의 공원경관공공 공간인프라)를 건축하는 것이었다.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이다.

 

8월 말본지 박명권 발행인이 지은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도서출판 한숲)이 출간됐다지난 25년간 한국 조경 설계의 도약기를 이끌며 다듬어 온 조경 이론과 실천에 대한 일곱 가지 생각을 펼친 책이다자연과 인간과학과 예술도시와 건축디자인과 문화공간과 시간채움과 비움전통과 한국성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저자의 설계 작업들과 함께 엮여 전개된다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부분은 매력적이면서도 논쟁적인 책 제목이다출간 기념 북토크 준비를 위해 조금 먼저 책을 접한 몇몇 사람들은 하나 같이 도시건축조경을 동시에 배치한 제목이 흥미롭고 탁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이 제목에 대한 이들의 (그리고 예상되는 여러 독자의반응 이면에는 아마도 이런 질문이 담겨 있을 것이다도시를 건축하는 조경그것은 현실인가 당위인가 지향인가?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을 하나의 문장으로 바꾼다면 조경은 도시를 건축한다일 것이다. ‘해야 한다는 당위란 존재할 수 없으므로 현실 아니면 지향일텐데이 문장이 지금의 현실을 반영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조경은 도시를 건축한다는 지향은 동시대 조경에 적합한 것일까책의 뒤표지에 들어갈 짧은 추천사를 부탁받고나는 고심 끝에 네 줄짜리 짧은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그는 조경의 새로운 좌표곧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의 문을 연다.” 이 문장에서 고민거리는 형용사 새로운이었다옴스테드의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부터 이미 조경은 도시를 건축하는 사명을 자임했다. 150년 묵은 이 지향점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사촌 분야와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영역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불안감과 영토를 넓혀야 한다는 피로감으로 이중의 우울증을 겪고 있는 동시대 조경의 정체성 때문이다이른바 위기론의 틈바구니에서 가드닝으로 회귀하는 현상마저 감지된다이러한 시대 착오적 상황에서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에 대한 토론은 새롭고중요하다. 150년 전 옴스테드의 시대와 다른새로운 좌표로서의 도시를 건축하는 조경을 두고 열띤 논쟁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그들이 설계하는 법’ 최재혁 소장(스튜디오 오픈니스) 편이 이번 호로 막을 내린다. 석 달간의 큰 수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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