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에디토리얼] 정원박람회가 남긴 것
  • 환경과조경 2017년 11월

짙은 가을 풍경으로 풍성한 11월, 이번 호에는 『환경과조경』이 주관한 제3회 서울정원박람회(9월 22일~26일)를 비롯해 제5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9월 29일~10월 1일), 동탄여울공원 공공정원의 수상작과 초청작을 싣는다. 지난 몇 년간 붐을 이룬 여러 정원박람회의 성과와 의미를 진단하는 지면을 기획했지만, 아쉽게도 내년 봄으로 미루기로 한다. 최근의 정원박람회 열풍은 보다 면밀한 평가와 섬세한 토론을 요청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아쉬운 대로 우선 주변의 반응을 간단히 취재해보면, 정원박람회의 다층적 지향점을 이제는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정원 문화의 확산과 정원 산업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보다는 하나에 집중한 목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후화된 도시 공원 재생의 계기라는 또 다른 좌표를 지향한다면 박람회 전반의 틀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여러 지자체의 과시적 전시 행정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몇 년간의 정원박람회는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수용하고 선도한 동시대 녹색 문화의 생생한 한 장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길게 보자면 이미 5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 정원박람회에 어떤 패턴이나 프레임이 생겨 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테면 박람회의 주제와 참여 작품 다수가 낭만적 감상이나 노스탤지어에 호소하는 성향, 일회성 보여주기나 장식적 취미로 흐르는 경향이 고착되고 있다는 우려다. 정원박람회가 감성 취향만을 앞세우기보다 ‘지금, 여기’의 도시 이슈에 적극 개입하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면, 적어도 사회적·환경적 의제를 담은 주제를 제시하거나 철저한 미학적 실험을 통해 전문적 해법을 제안하는 장이되어야 할 것이다. 그간의 정원박람회는 조경이라는 전문 직능과 학제에 무엇을 남겼는가. 이 문제는 심도 있는 토론과 장기적인 평가를 요청한다. 하지만 적어도 정원박람회가 신진 조경가의 등용문이자 실험실 역할을 했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제도권 조경계가 침체된 상황에서 설계 시장의 메커니즘에 동승해 조경가로 성장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청년, 신인, 소장, 신진 조경가가 이 막막한 장벽을 뚫을 수 있는 돌파구가 최근의 정원박람회였다는 점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적지 않은 수의 신인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실험하고 구현할 기회를 얻고, 자신의 이름을 공론장에 알리고 활동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주목할 만한 여러 신진 조경가가 있지만, 우선 2015년 이후 서울정원박람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 코리아가든쇼 등에서 수상하고 이를 계기로 한강예술공원 시범사업,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등에 초대되기도 한 최재혁 소장(스튜디오 오픈니스)과 이메일로 대화를 나눠 보았다. 정원박람회를 통해 더 많은 신진 조경가가 탄생하길 기대하며 그의 이야기 일부를 옮긴다.

처음 정원박람회에 출품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처음엔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서였다. 정원 설계하고 만드는 오피스에 근무를 하면 자연스레 실제로 만들어보고 싶은 아이디어들이 쌓여간다. 대개의 주택 정원과 오피스 정원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삶의 공간을 디자인해야 하므로 설계와 시공에 제약이 많다. 평소에 상상만 하며 꿈꾸던 공간과 디테일을 실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정원박람회에 망설임 없이 출품했다."

정원박람회는 조경가 최재혁 개인에게 어떤 득과 실을 남겼나? “온전한 나의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 보고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많지는 않지만 그 예산을 지원받았다는 것 자체가 큰 소득이었다. 몇 차례의 박람회를 통해 재료, 스케일, 공간감에 대한 설계적 감각과 시공 과정을 훈련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디자이너로서의 나를 알릴 수 있던 점 또한 큰 득이었다. 보통 정원박람회를 하면서 실이 생기는 경우는 직장 생활에서 마찰이 생기는 경우인데, 내 경우에는 당시 직장의 대표가 크게 배려해 주셔서 문제를 겪지 않았다. 특별히 실이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원박람회의 수상이 다른 프로젝트 수주 등으로 이어졌나? “몇 차례 수상을 한 것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일반적인 조경 설계 프로젝트와 달리 정원은 손수 만든 결과물을 보여주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올해 초 독립한 이후 여러 지인들로부터 조경 설계 또는 정원 시공을 의뢰받아 진행하고 있는데, 박람회에 참여해 수상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의 정원박람회 붐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몇 해 전에는 정원박람회가 단발성 행사로 그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의 흐름을 보면 지속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면은 일반 대중에게 정원에 대한 인식을 키워주고 있다는 점, 대학생을 포함한 젊은 층에게 디자이너로서 훈련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최근 정원박람회는 조성 후 존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박람회 장소, 작품 수, 전시 위치 선정 등에 있어서 더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구체적인 바람을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을 선정할 때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지, 향후 유지·관리상 문제가 없게 설계했는지를 보다 높은 비중으로 평가해야 한다."

 

지난 9월 8일 마감한 『환경과조경』 주최 ‘2017 조경비평상’의 응모작은 두 편이었습니다. 심사를 맡은 ‘조경비평 봄’ 회원들은 밀도 있는 토론 끝에 손은신(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 박사과정)의 평문 “더 새로운 공원을 향하여: 공원은 진화하는가?”를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수상작 전문과 심사평은 올해를 마무리하는 12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수상자 손은신 씨가 이론과 실천의 접면을 가로지르며 조경 문화의 성숙을 주도할 비평가로 성장하길 기대하며 축하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속표지.jpg

월간 환경과조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