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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내부의 난민들
  • 환경과조경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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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량, ‘New Home’, 참여형 프로젝트, ‘도시형 원룸’ 파트 스틸 이미지, HD 비디오, 90분, 2012. 집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풍자한 작품으로 재개발 지구의 미입주 신축 주거 건물을 무단 점거한 후 MT(Midnight Terror)를 진행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상식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우리는 가끔 타인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에 화가 날 때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상식이란 결국 나 개인이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즉 어느 정도 이미 합의된 사회적 약속이며 나와 내 주변에서 통용된다고 내가 믿는, 학습에 기반을 둔 스스로의 믿음이자 지레짐작이다. 언어가 합의를 ‘가정’해야만 그 위에 가상의 건물이라도 지을 수 있듯이, ‘상식’ 역시 불가능한 합의를 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자신이 학습한 그룹 이외의 집단이나 상대에게 나의 상식이 통용 가능한지 실험해 보지 못한 채 사회의 상식을 상정한다. 그것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 채 어떤 상황에 대응했다가 상처를 받거나 가시 돋친 말로 상대의 몰상식을 탓한다. 내가 사회와 공유한다고 믿고 있는 상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우리의 상식, 도덕, 법과 제도는 우리 모두를 담거나 모두에게 동일할 수 있는가? ‘우리’는 누구일까? 내가 속한 사회의 주류 상식이 내 상식과 달라 어려움을 겪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정 수준의 다름이야 인정하고 공생을 타진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 또는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의 상식이 그들과 공생 불가능할 정도로 나의 상식과 다르다고 느낄 때, 특히 그런 상식을 기반으로 한 사회, 도덕과 법, 제도를 포함한 사회가 나와 맞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언어, 상식, 사회가 모두를 제대로 담지 못하는 애초에 불가능한 합의, 거짓 합의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우리는 어째서 이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세우고 있는 것일까?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 354(2017년 10월호수록본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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