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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조경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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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이매거진 가격 9,000

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8월의 크리스마스
잡지 만드는 사람들에겐 정기구독자 수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환경과조경』 편집부는 누가, 어느 콘텐츠를, 얼마나 많이 읽는지 늘 궁금합니다. 무더위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한여름의 마감 날이지만, “매달 첫날을 기다리게 하는 잡지, 받자마자 소중한 두 시간을 빼앗는 잡지, 한 달에 세 번은 다시 펼쳐 보는 잡지, 과월호도 다시 뒤적이게 하는 잡지”를 만들자는 소박한 다짐을 다시 한번 되 새겨 봅니다. 그게 무슨 소박한 다짐이냐고요? 맞습니다. 거창한 꿈인 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잡지 편집 일에 발 들이기 전엔 책상 위에 배달된 『환경과조경』을 한 달 내내 열어보지 않은 적이 많습니다. 큰 인심 쓰듯 넘겨보더라도 5분이면 족했습니다. 어느 영화 잡지는 3년 치를 봉투도 뜯지 않고 쌓아두었다 재활용품 수거함에 곱게 전달한 적도 있고, 어떤 미술 잡지는 미루고 미루다 구독료 본전 생각 반, 미술 애호가여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의무감 반에 작심하고 하루에 2년 치를 독파한 적도 있습니다. 아마 독자 여러분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물론 가끔은 격무에 지친 편집부를 들뜨게 하는 상큼한 미담(?)도 들려옵니다. 얼마 전에는 어느 학교 조경학과 학생 대여섯 명이 모여 매달 『환경과조경』으로 세미나를 하고 있다는 깜찍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열독률 높은 연재 꼭지 중 하나로 알려진 ‘시스’―줄임말이 대세인 시대, ‘시네마 스케이프’를 ‘시스’로 줄여 부르는 독자가 많다고 합니다―의 필자는 어느 열혈 독자로부터 장문의 리뷰 글을 받았다고 며칠 전 편집부에 알려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확장과 소통의 경험은 『환경과조경』의 큰 동력입니다. 월간이라는 사이클이 반복과 관행과 진부함의 굴레를 초대할 때면, “한국 조경의 문화적 성숙을 이끄는 공론장, 조경 담론과 비평을 생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장, 세계적 동시대성과 지역성을 수용하고 발굴하는 전진 기지”라는 비전을 다시 소환해 엄중한 자기 검열의 잣대로 삼겠습니다. 이번 달 ‘프로젝트’ 꼭지에는 모처럼 국내 작품들을 싣습니다. 더 많은 국내 작품을 실어 한국 조경의 오늘을 기록하고 토론과 비평의 장을 마련한다는 편집 방향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보다는 실천하기 쉽지 않은 숙제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난점은 사진입니다. 조경 작업의 특성상 초여름, 적어도 늦봄은 되어야 괜찮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어서 상반기에는 국내 작업을 싣기 힘든 형편입니다. 그렇다고 마침 사진 작업이 용이한 계절에 완공되었다는 이유로 이번 달 작품들을 고른 건 아닙니다. 지면에서 바로 느끼시겠지만, 김아연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맘껏 놀이터’와 정원사친구들(조혜령, 최윤석)의 ‘엄마의 정원’은 어린이 공간의 설계와 문화를 둘러싼 관행에 반기를 든 문제작입니다. 폭염이 한풀 꺾이면 꼭 들러보시길 권합니다. 정원이라는 미명 하에 강요되는 과잉 의미, 과다한 상징, 조악한 장식에 지친 분들에게 신선하고 담백한 경험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김아연 교수가 말하듯, 이러한 작업이 “우리 사회의 놀이와 놀이터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축적되고 … 더 즐거운 공간을 만들기 위한 비평과 문제 제기가 이어질 열린 텍스트로 작동하길” 바랍니다.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 하나를 덧붙일까 합니다. 직접 취재하지는 않았지만 떠도는 풍문에 따르면, 조경 설계의 ‘사회적 실천’을 예시해 준 이 두 작업의 설계비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시민 단체나 아동 구호 기관과 엮인 이런 류의 ‘착한’ 프로젝트일수록 이른바 전문가의 ‘재능 기부’나 ‘열정 페이’를 당연시하는 풍토가 안타깝습니다. 『환경과조경』에는 다양한 성격의 여러 연재 꼭지가 있습니다. 주변의 독자들에게 탐문해 보면 꼭지마다 독자층이 좀 다릅니다. 잡지를 처음부터 넘길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선호하는 연재부터 먼저 읽는다는 독자가 적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학생 독자들은 ‘그들이 설계하는 법’을 읽고 마음을 충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지난 호부터는 최근 여러 국내외 설계공모에서 주목할 만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조경가 전진현(스튜디오 MRDO 공동대표)이 ‘그들이 설계하는 법’의 열다섯 번째 주자를 맡아주고 있습니다. 좁은 의미의 조경에서 가장 거리가 먼 연재는 아마 진나래 작가(일시합의기업 ETC, 잠복자들 공동대표)의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일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정보를 많이 얻고 있는 꼭지입니다. 틀에 박힌 조경이 권태롭다면, 텍스트의 양과 밀도에 질려 다음으로 미루어두지 말고 일독해 보시길 편집자로서 감히 권합니다. 2014년 리뉴얼 이후 연재 원고를 바탕으로 두 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그리 두텁지 않은 한국 조경과 도시설계의 이론적 폭을 확장하고 있는 책, 김영민 교수(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의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2016)와 김세훈 교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도시에서 도시를 찾다』(2017)입니다. 오는 8월 말에는 현재 연재 중인 꼭지 하나가 새로 묶여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의 작은 출판 축하 파티가 준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오래 전 영화 제목을 듣는 순간, 갑자기 무더운 한여름의 긴 터널을 시원하게 통과할 용기가 생깁니다. 『환경과조경』이 주최하는 ‘2017 조경비평상’의 마감이 오는 9월 8일로 다가왔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경’을 주어로 고민 중인 예비 조경 비평가들의 많은 출품을 기대합니다.
[칼럼] 도심 속의 강, 넘치면 물러나고 모자라면 다가가고
넘치는 강을 막기 위해 둑을 만들고 모자란 식수원을 담기 위해 강을 가둔다. 가득 찬 물은 도시에 시원한 경관을 준다. 둑을 쌓으니 유람선은 물론 대형 선박이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른다. 막힘이 없는 최고의 도로다. 강둑을 쌓아 육지와 강을 분리한다.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이 모인다. 구경하기 좋고 산뜻한 길이 생겨 공원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제 속도를 잃은 강은 자기 정화력을 잃었다. 어마어마한 비용으로 끊임없는 정수 처리와 인공적 관리를 해야 한다. 유속은 빨라지고 거센 바람에 큰 나무가 버티지 못한다. 수천 년 동안 만들어진 생태 시스템은 통제될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도 잠시,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도시를 쓸어버린다.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또다시 둑을 무너뜨리지만 잃어버린 시간은 복구가 더디다.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 원주민을 쫓아낸 섬의 나무는 새똥에 의해 썩어간다. 자연은 철저한 계산주의자다. 우리가 쓰는 만큼 언제든 그만큼의 대가를 원한다. 이렇게 끊임없는 바벨탑의 역사 같다, 강과 도시는. ‘크고 넓으며 가득한 물이 흘러가는 강’이라는 의미의 한가람에서 유래한 한강은 강원도 태백에서 시작해 서해로 들어가는 총 길이 494km의 긴 강이다. 부산히 흐르던 강은 서울의 넓은 유역으로 들어서며 속도가 느려져 여러 개의 섬과 드넓은 백사장을 만들어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여의도, 밤섬, 노들섬, 지금은 사라진 저자도, 잠실섬 등은 한강이 실어온 모래에 의해 생긴 섬들이다. 그러나 숨 가쁜 산업화와 도심의 확장으로 한강의 모습은 급변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큰 강이지만 도로에 둘러싸여 접근마저 쉽지 않고 찾아오던 철새마저 오지 않는 곳이 되었다. 짧은 근대화 속에 도시가 커갈수록 한강은 멀어지고 있었다. 지난 4월 ‘한강예술공원’의 시범 사업이 여의도에서 있었다. 여의도를 거점으로 한강 전체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우연한 기회를 통해 기획팀 책임 큐레이터로 참여하게 되었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마라.” 처음 큐레이팅을 맡은 후 많은 이들의 부탁이었다. 멋진 플로팅 건물이 세워지고 한강을 조망하기 위한 카페가 들어서고 값비싼 요트 정박장에 자전거 도로가 생기고 다양한 모습의 한강시민공원이 생겨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한강을 아파한다. 그러나 그렇게 지켜만 보기에는 한강이 너무 아깝다. 한강의 위성 사진을 한 벽에 가득 넣고 보니 참 넓다. 그리고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공간이 얼마나 되나 보니 참 좁다. 강 면적을 포함한다면 전체 면적의 10%나 쓰고 있을까. 한강은 크지만 정작 이곳을 이용하는 모습은 천편일률이다. 그리고 몇몇 곳에만 사람이 차고 넘친다. ‘크고 넓다’는 의미의 한강이라는 이름이 참 부끄럽다. 옛 책이나 그림을 보면 한강에 배를 띄우거나 경치가 좋은 곳에 정자를 놓고 시와 노래를 즐긴 흔적이 많다. 바람 있고 향 있고 맛 있으니 그야말로 오감으로 온전히 큰 경관을 즐긴다. 오늘날 한강 변 아파트는 최고의 값을 치르는 멋진 뷰를 가졌지만, 강은 멀어졌고, 바람도, 향기도, 맛도 사라졌다. 그저 건물의 화려한 빛을 반사하는 큰 배경에 불과하다. 강둑을 따라 거닐어도 조약돌을 줍거나 살랑살랑 강을 만지지 못한다. 강변에 왔지만 정작 살아있는 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강을 느끼기 위해 파리의 센 강에서는 돌계단을 통해 강변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한강을 제대로 느끼려면 높이 올라가거나 차 속에서 강변도로를 달리며 도심의 야경을 배경 삼아 보아야 한다. 사유화로 느끼는 쾌감이다. 1960년대의 파리 또한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으로 속도를 담아야 했다. 도시에 차가 다니는 것은 멋진 일이었고, 차 안에서 가장 멋진 곳을 보는 것이 도시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그러니 파리의 가장 멋진 곳, 센 강변을 도심 고속도로로 만든 것은 당연하고 합당한 일이었다. 그렇게 40년간 자동차는 문화유산인 센 강변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2년 ‘파리 플라주plage’라는 실험적 이벤트가 센 강변을 변화시켰다. 배를 개조한 수영장이나 클럽, 간이 레스토랑, 피크닉 등 참여로 만들어지는 공간이 센강의 풍경이 되어갔다. 2008년 파리 시장으로 나선 사회당의 들라노에는 도심 속 고속도로의 위상 변화와 공공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센 강변의 도심 고속도로 중 알마 다리와 오르세 미술관을 잇는 구간을 공공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공약을 내걸고, 2011년에는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프로젝트의 방향은 ‘존재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여’, ‘기존의 기능에서 새로운 기능으로 변화시키며’, ‘실험적이고,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하며’, ‘너무 비싸지 않고, 가역성이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중 다양한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가장 간소한 안이 선정되었다. 가볍고 조립 가능하고 변할 수 있고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개념을 내건 작품으로, 문화, 건축, 조경, 스포츠, 무대 설치 등을 망라한 연합팀이 책정된 예산보다 50만 유로나 적은 안을 제안했다. 2013년 6월, 2.3km의 도심 고속도로가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변모했다. 기존 고속도로의 안전장치나 표지판은 없애되 아스팔트 도로는 남겨 형태적 변화를 거의 가하지 않았다. 다만 자동차 대신 새로운 사용자인 사람이 주인이 되었다. 시대의 욕구는 고스란히 공간 프로젝트에 담긴다. 도시 경관을 변화시키는 강변 프로젝트는 자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근대 서울과 한강의 역사는 채 60년이 안 된다. 근대 도시가 원하는 강과 2017년 현재의 도시가 필요로 하는 강은 결코 같지 않다. 그렇다고 과거의 유산을 비판하고 더 먼 과거로 되돌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지난 여름 파리에서는 이례적인 대홍수가 났다. 센 강이 넘쳐 도시 전체가 강이 되었다. 활기로 가득 찼던 도시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물이 채웠다. 센 강의 많은 시설물이 철거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또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현재 우리가 원하는 강의 모습이 있다면 그저 실험하고 더 많은 시도를 하면 된다. 두려움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경이로움으로 변화시키고 관계에 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무언가 대단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시간을 가지고 쌓이는 경험으로 넘치면 물러나고 모자라면 다가가면 좋겠다. 한강에 있던 무수한 섬이 그러했듯. 박연미는 서울대학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 릴 건축조경학교에서 석사를 마친 프랑스 국가 공인 조경가다. 파리 시청과 아틀리에 자클린 오스티에서 뱅센 동물원 외 다수의 도시설계와 공원 설계를 담당했다. 2017년 한강예술공원 기획팀에 책임 큐레이터로 참여했으며, 경관, 예술, 농업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맘껏 놀이터
“모든 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습니다” _ 유엔아동권리협약 31조 2017년 7월 4일 개장한 서울어린이대공원 맘껏 놀이터의 푸른 언덕을 어린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닌다. 이 평화로운 풍경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에서부터 비롯된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의 교육 제도가 초래한 극심한 경쟁에 노출된 한국 어린이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해왔으며 어린이의 놀 권리를 증진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해왔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나가서 놀자!’ 캠페인을 통해 놀이의 가치와 건강한 놀이 문화 확산을 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설공단과 함께 서울어린이대공원 내 낙후된 놀이 시설을 철거하고, 어린이들의 자발성과 상상력으로 맘껏 뛰어 놀 수 있는 자연 친화형 놀이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맘껏 놀이터는 우리나라 어린이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의 반증인 셈이다. ...(중략)... 책임 디자인 및 연구 책임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실시 설계 스튜디오 테라(1차 공사), 조경설계 힘(2차 공사, 대표: 허대영) 로고·입구 조형물·손글씨 황중환(조선대학교) 공사 감독 손성일, 조금선, 정창수(서울시설공단 서울어린이대공원) 시공 (주)보성조경(1차 공사, 대표: 유연송), (주)거탑건설(2차 공사, 대표: 김명중), (주)쌔즈믄(목구조물, 대표: 최승호), 아리울씨앤디(수경 설비, 대표: 김봉진) 계획·설계 서울시립대학교 조경설계연구실(안주연, 민혜경, 김현근, 권세진, 엄하영, 김지은), 스튜디오 테라, 스튜디오 힘(허대영, 안형주, 박준영), 유니세프 한국위원회(황혜영, 김보경), 서울어린이대공원(손성일, 조금선) 자문 이수정((사)놀이하는 사람들), 편해문(놀이터 디자이너), 오창길((사)자연의벗 연구소), 김명순(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조성 주체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서울시설공단 서울어린이대공원 위치 서울시 광진구 능동로 216 서울어린이대공원 내 (구)모험의 나라 놀이터 일대 면적 약 3,996m2 완공 2017. 6. 30.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내외 정원, 놀이터, 공원, 캠퍼스, 주거 단지, 등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조경 설계 프로젝트를 담당해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드러내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 한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 테라 대표다.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엄마의 정원
엄마가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 조혜령 서울그린트러스트(이하 SGT) 정원문화클럽의 네 번째 어린이정원 대상지가 서울숲으로 정해졌다. 그동안 SGT 운영위원으로써 어린이정원의 심사를 하거나 자문을 하는 등 소극적으로 참여해왔다. 그러던 참에 두 돌 된 딸아이의 엄마가 되니 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클럽 멤버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이한아 팀장(SGT)에게 엄마들이 모여 만드는 동화 같은 숲 속 정원에 대한 아이디어를 얘기했다. “아이들이 작은 동굴과 버들로 만들어진 터널을 지나 신기하고 허무맹랑한 캐릭터와 식물이 살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숲으로 모험을 떠나는 거예요~.” 서울숲 내 작은 어린이 숲 정원이 자연과 식물을 공부하는 학습장이 아니라, 아이들의 상상과 꿈의 공간으로 이용되길 바랐다. ‘엄마의 정원My Kids in Wonderland’ 제안서는 클럽 멤버들에게 전해졌고 KEB 하나은행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뻥이면 어때, 재밌기만 하면 되지 최윤석 제안서 한 구석에 쓴 문장이다. 판타지를 정원과 연결한다는 것이 중요한 아이디어였다. 아이들이 식물과 자연에 친근함을 느끼는데, 그 매개체가 바로 판타지다. 엄마 아빠들은 ‘교육적’이라는 것에 일종의 강박증이 있는 듯했다. 자연은 가르치는 과목이 아니다. 아이와 자연에서 함께 노는 시간 자체를 중요하게 보았다. 그런 면에서 판타지 스토리가 제격이다. 미리 알고 있지 않아도 즉석에서 맘껏 지어내면 된다. 판타지는 허구다. 지루한 정보 위주의 식물 표찰은 어린 아이들에겐 무의미하다. 식물의 어원이나 특징으로 동화 같은 이야기를 지어냈다. 스토리가 담긴 표찰은 아이와 놀러온 엄마 아빠에게 힌트를 준다. ...(중략)... 설계 정원사친구들(조혜령, 최윤석) 기획 서울그린트러스트 정원문화클럽(김미화, 김선규, 김인호, 김정명, 박병원, 설동근, 양병이, 이강오, 이유미, 이헌재, 정영선, 조경진, 하영구) 시공 정원사친구들(조혜령, 최윤석, 경정환, 이규철, 방선영, 황아름, 최 인수, 박은서) 협력 서울숲컨서번시(이한아, 이우향, 김한수, 김성환, 전수연, 이민옥), 성동구 엄마들(곽설미, 한희숙, 안정하, 설은경, 서민경, 김현자) 후원 KEB 하나은행 위치 서울숲 가족마당 메인무대 뒤편 면적 660m2 공사 기간 2017. 4. 3. ~ 2017. 4. 28.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조혜령은 경희대학교 원예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그리니치 대학교(University of Greenwhich)에서 정원 디자인과 역사를 공부했다. 정원사친구들과 순천국제정원박람회(2013), 코리아가든쇼(2014) 등에서 수상했으며, 라이브스케이프와 함께 캐나다 레포드가든 페스티벌(2015)에 참여 작가로 활동한 바 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중이다. 최윤석은 경희대학교에서 환경조경디자인을 전공했고 2008년 (주)그람디자인을 설립했다. 아이디어와 디자인에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명쾌함을 추구한다. 2011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정원사친구들(Gardening friends)은 정원과 관련한 다양한 작업을 통해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공간 만들기를 추구하는 디자이너 집단이다.
힐스테이트 영통
현대 도시 생활에서 사회적, 경제적 압박은 필연적인 요소로 인간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힐스테이트 영통은 이런 문제를 일상에서 해소하기 위해 ‘힐링이 되는 푸른 녹음의 공원을 품은 단지’ 조성을 목표로 했다. 정형적인 조경 공간의 틀에서 벗어나 숲 속 산책로를 거닐 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동선, 자연에서 아름다운 계절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테마숲, 조경석과 초화가 눈길을 끄는 테마가든으로 특화했다. 또한 가족과 이웃이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테마 정원과 놀이 공간을 조성해 삶의 여유를 주는 휴식 공간으로 계획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수원의 이미지를 담아내기 위해 석가산으로 수원을 대표하는 주산인 광교산을 연출하고,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인 수원의 자랑, 화성의 성곽과 망루를 조형 가벽과 퍼걸러 등 시설물로 표현해 단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했다. ...(중략)... 기본 설계 아텍플러스 실시 설계 디오 특화 설계 염원석 시공 현대건설 조경 식재 정한조경(정영한) 조경 시설 동영조경(김동훈, 이윤주, 조경진) 놀이 시설 원앤티에스, 청우펀스테이션 환경 장식품 및 석가산 김병진, 용정환경 미술 장식품 박용국 테마가든 에코존, 정희선, 권아림 발주 노마드씨엔디 위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 44-1 대지 면적 약 113,000m2 조경 면적 약 45,000m2 준공 2017. 8.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신길 래미안 에스티움
신길 래미안 에스티움이 들어선 신길뉴타운은 다세대 주택과 아파트, 저층 상가가 밀집해 공원이나 쉼터 등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녹지가 부족하다. 이에 래미안의 조경 브랜드인 ‘포레스토리Forestory(forest와 story의 합성어로 숲 속에서 펼쳐지는 나의 이야기를 의미)’를 도입해 단지 내에서 숲을 체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원 문화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했다. 대상지는 남쪽과 북쪽의 레벨 차가 15m에 달하는 경사지다. 지형의 특성을 살려 세 개의 단으로 나뉜 테라스형 단지를 조성했다. 또한 주동 별로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보다 놀이터, 휴게 공간, 녹지가 함께 어우러진 클러스터를 계획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하도록 유도했다. ...(중략)... 설계 신화컨설팅 시공 삼성물산 조경 식재 장원조경(주) 시설물 주원조경(주) 휴게 시설 이음디엔아이 운동 시설 청우펀스테이션 위치 서울시 영등포구 가마산로79길 7 대지 면적 70,569m2 조경 면적 31,925m2 준공 2017. 4.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여의나루 국제설계공모
지난 6월 15일 서울시는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에 건립 예정인 ‘여의나루(통합선착장)’의 밑그림에 해당하는 ‘여의나루 국제설계공모’의 당선작을 발표했다. 이번 설계공모는 한강협력계획 4대 핵심사업의 선도 사업으로 한강 관공선의 관리와 수상 교통, 민간 수상 레저 등의 다양한 선박을 통합 관리하는 선착장을 조성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설계 범위와 대상은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사이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 한강 수면의 연면적 2,100㎡ 규모의 선착장으로, 기능 시설(선박의 승하선을 위한 대합실, 매표소 등)과 편의 시설로 구성된다. 서울시는 통합선착장이 단순히 배를 정박하는 공간 개념을 넘어서 공공은 물론 민간 선박의 입출항을 관리하는 한강 수상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하는 컨트롤 타워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관리됐던 한강 관공선 17척이 앞으로 이곳에서 통합 관리되며, 민간 선박도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는 7월 중 당선자와 설계 계약을 체결하고, 내년 초까지 기본 설계와 실시 설계를 마무리하여 상반기 중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2019년 하반기 준공이 목표다. 이번 설계공모의 심사위원은 국내외 건축가 및 조경, 구조 분야 전문가 5인이 맡았으며, 선착장 본래의 종합적인 기능 및 역할 수행 여부, 새로운 한강의 명소로서의 가능성에 주안점을 두고 이뤄졌다. ...(중략)... 1등작 POETIC PRAGMATISM(시적 실용주의) Cheungvogl 2등작 INTERACTIVE WATERSCAPE(인터랙티브 워터스케이프) 운생동 + Nakae architects + 김영민 3등작 WATERSCAPE: RIVER, TIME AND SPACE(워터스케이프: 강, 시간, 공간) Davin tanasa & associates 4등작 RIVER FROM CITY, PARK FROM RIVER(도시로부터의 강, 강으로부터의 공원) 푸하하하 프렌즈 5등작 WITH THE FLOW: REDISCOVER SEOUL AS A [RIVER CITY](흐름과 함께: ‘강의 도시’로서 서울의 재발견) NAAW Limited 주최 서울시 위치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8 일대(마포대교와 원효대교 사이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 규모 여의나루 상부: 업무시설(대합실 및 매표소 등), 편익시설 등(연면적 2,100m2) 여의나루 하부: 강재 부유체로 면적은 약 2,400m2 내외 공모 방식 국내외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일반설계(공개)공모 공사비 27,500백만원(제경비 및 부가세 포함) 설계비 1,045백만원(부가세 포함) 설계 기간 계약일로부터 10개월(사업 추진 과정에서 조정될 수 있음) 시상 당선자는 발주기관과 설계용역 계약 체결 참가 보상비 참가업체 수 2개 이하: 3,330만원 참가업체 수 3개: 4,000만원, 3,000만원 참가업체 수 4개: 4,000만원, 3,000만원, 2,000만원 참가업체 수 5개 이상: 4,000만원, 3,000만원, 2,000만원, 1,000만원 심사위원 박선우(한국예술종합대학교 교수) 최문규(연세대학교 교수) 최정권(가천대학교 교수) Alejandro Zaera Polo(AZPML 대표) Ryue Nishizawa(Ryue Nishizawa 대표) 예비 심사위원 심재현(세종대학교 교수) 공모운영위원회 위원장 류중석(중앙대학교 교수) 전문위원(PA) 서현(한양대학교 교수) 공모관리팀 (주)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CBRE코리아(주) 진행 김정은,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서울시, 수상팀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여의나루 국제설계공모] 시적 실용주의
콘셉트와 마스터플랜 마스터플랜은 현존하는 기반 시설 그리고 대중교통 네트워크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으며, 여의나루 선착장 조성을 통해 물 위에 명확한 행선지를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여의나루 선착장 높이 5m에 달하는 터미널 건물은 물결을 따라 선과 같이 일직선 형태를 이룬다. 이러한 세장한 비율은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으로 최대 700톤급 선박 7척, 개인 선박 20척과 더불어 타 유람선 및 교통수단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도록 한다. 터미널과 마리나 시설이 평면적으로 살짝 구부린 형태를 띠는 것은 선박의 움직임에 최적화하고, 보다 분명한 물길을 설정하기 위해서다. 터미널은 강기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는 한강 위를 걷는 경험을 강조하고 물과 땅의 경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여의나루 국제설계공모] 인터랙티브 워터스케이프
여의나루는 한강과 여의도 한강공원을 통합하는 건축과 조경의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이는 도시와 자연의 맥락에서 고립된 또 다른 인공 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여의나루는 도시와 강 사이의 경계를 변환해 경관, 시티스케이프, 건축적 프로그램이 교차하는 워터스케이프를 제안한다. 강과 도시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고 새로운 수 공간 체험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선착장을 제안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여의나루 국제설계공모] 워터스케이프: 강, 시간, 공간
여의도는 계획 단계에서 실험을 유도하며 한강의 새로운 이미지를 부각한다. 본 공모의 설계 지침은 강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선착장의 기본적인 목적을 넘어 문화의 요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안내한다. 우리는 다층적 여의나루를 제안하고자 한다. 여기서 프로그램은 경관 요소 중 하나인 강을 다룬다. 소박하지만 독특한 전망로를 가진 부두, 그리고 동시에 교통 터미널이기도 하다. 이 설계안은 강의 현대적인 가치를 기념하는 동시에 지나가는 이들이 물 위를 거닐거나 시간을 느끼고 여의나루의 과거와 열망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도록 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여의나루 국제설계공모] 도시로부터의 강, 강으로부터의 공원
선착장은 한강공원만을 위한 시설인가? 우리는 선착장이 배를 타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한강을 새롭게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서울의 수변 공간이 도시 공간과 분리되어 인식되는 건 한강을 도시가 아닌 수변 시설의 일부로만 여긴 개별적 계획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한강을 활발한 도시 조직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건축적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이벤트성 수변 구조물의 축조로 결말이 맺어지곤 했다. 우리는 언제라도 철거할 수 있는 가변 시설 같은 선착장이 아닌, 한강에 깊이 뿌리박은 도시 기반 시설로서 선착장을 제안한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여의나루 국제설계공모] 흐름과 함께: ‘강의 도시’로서 서울의 재발견
‘생명의 강’이라 불리는 한강은 서울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강변에 정착한 이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현재 홍수에 취약한 지리적 환경 때문에 한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여의도는 서울에서 가장 큰 하중도로 방송국과 은행, 금융 회사들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강을 따라 자리한 여의도 한강공원은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인기 있는 여가와 문화의 명소다. 이처럼 현대 도시의 모습과 자연 경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특징은 여의도를 도시 강변 공공 공간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여의나루 통합선착장은 ‘한강협력계획 4대 핵심사업’ 중 하나로 일상의 통근과 여가를 모두 담당하는 수상 교통 허브다. 우리는 이 구조물을 모두에게 열린 플랫폼으로 만들어 네 가지 주요 목적을 이루고자 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세운상가군 재생사업 공공공간 국제지명현상설계공모
지난 6월 1일 서울시는 ‘다시·세운 프로젝트’ 2단계 사업으로 추진한 ‘세운상가군 재생사업 공공공간 국제지명현상설계공모(삼풍상가~남산순환로 구간)’의 당선작을 발표했다. ‘다시·세운 프로젝트’는 낙후되고 침체한 세운상가 일대를 보행의 중심축이자 창의 제조 산업의 혁신지로 재생하는 사업이다. 종로~세운상가~청계·대림상가 구간(420m)을 대상으로 한 1단계 사업은 올해 8월 준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이번 공모의 핵심은 삼풍상가~진양상가의 데크와 공중 보행교 주변 공간을 정비해 보행 환경을 개선하고, 주변 지역과 연계해 북악산~종묘~세운상가군~남산을 잇는 서울의 남북 보행 중심축을 완성하는 것이다. 세운상가군 주변에 조성될 폭 4m의 도로(서측)와 폭 7~20m의 경관 녹지(동측)를 고려한 계획을 제시해야 했다. 퇴계로(남측)~필동~삼일대로~남산순환로를 잇는 입체적 보행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 역시 주요 과제다. 특히 자동차 전용도로인 삼일대로의 경우, 입체 보행을 통해 삼일대로와 남산순환로를 연결하는 방안이 요구되었다. 서울시는 올 하반기에 기본 설계(9월)와 실시 설계(12월)를 마무리해 내년 1월에 착공할 계획으로, 2019년 12월 준공이 목표다. 진희선 본부장(서울시 도시재생본부)은“종묘에서 세운상가군을 통해 청계천, 을지로를 거쳐 남산공원까지, 서울 도심의 남북 보행축을 연결하는 역사적 과업이 본격화됐다”며 “보행 네트워크를 통해 세운상가 일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중략)... 당선작 OPEN PLATFORM(오픈 플랫폼) Modostudio + 박열 + Sarti Engineering 우수작 A PLATFORM TO COHERENCE, OVERCOMING DISCONNECTION(단절을 넘어 연결의 플랫폼으로) 건축사사무소 OCA 가작 UNTITLED(무제) NL Architects 발주 서울시 위치 서울시 중구 을지로 158 일대 부지 면적 42,100m2 예정 설계비 1,055백만원(부가세 포함) 예정 공사비 33,603백만원(부가세 포함) 참가자 NL Architects(네덜란드), NO.MAD Arcquitectos S.L.P.(스페인), Modostudio(이탈리아), 아뜰리에 리옹 서울(대한민국), 건축사사무소 OCA(대한민국), 와이즈 건축(대한민국), 황두진건축사사무소(대한민국) 상금 당선작 1점: 설계 계약 우선 협상권, 상장(지명료 미지급) 우수작 1점: 상장, 지명료 가작 1점: 상장, 지명료 ※국내 건축사의 경우 3천만원, 국외 건축사의 경우 4천만원의 지명료 지급 심사위원 서현(한양대학교 교수) 박인수(파크이즈건축사사무소 대표) 김성홍(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류중석(중앙대학교 교수) Roger Riewe(Graz University of Technology 건축학부 학장) 예비 심사위원 임영환(홍익대학교 교수) 진행 김모아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서울시, 수상팀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세운상가군 재생사업 공공공간 국제지명현상설계공모] 오픈 플랫폼
국제도시 서울은 끊임없이 변하는 도시다. 세운상가 도시 길은 도시 기반 시설 시스템의 하나이며, 도시적 변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강북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 같은 기반 시설 시스템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하며, 주변 환경의 지속적인 변화를 활성화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 길의 일부가 단절되는 순간 공공 공간의 역할을 할 수 없으며, 그에 따라 세운상가 단지 내 여러 레벨 간의 심각한 단절이 발생한다. 따라서 서울의 공공 기반 시설의 시스템은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세운상가 단지의 도시 길인 오픈 플랫폼Open Platform은 서울 중심부의 유연한 기반 시설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서 출발했으며,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세운상가군 재생사업 공공공간 국제지명현상설계공모] 단절을 넘어 연결의 플랫폼으로
도시의 연결을 위해 건설된 플랫폼 세운상가는 현재 여러 가지 의미에서 단절의 아이콘이 되었다. 우리는 세운상가가 단절을 넘어 연결의 플랫폼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1. 서울을 잇는 플랫폼 서울시는 세운상가군을 통해 종묘와 최근 개장한 서울로 7017을 잇는 보행자축을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퇴계로에서 남산둘레길까지 이어지는 루트에 남산터널 요금소 위를 통과하는 새로운 보행로를 제시한다. 2. 도시 맥락을 연결하는 플랫폼 동서의 연결: 세운상가는 더 이상 동서를 단절시키는 장벽이 아닌 다양한 레벨에서 동서를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남북의 연결: 스페인의 도시 히로나Girona의 온야르Onyar 강의 경우, 보행로가 양쪽 강변에 번갈아 위치한다. 따라서 보행자들은 강 위에 놓인 다리를 통해 양 강변을 오가며 도시의 역동성을 느끼게 된다. 세운상가 역시 양쪽에 동일한 조건의 평행한 보행로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세운상가군 재생사업 공공공간 국제지명현상설계공모] 무제
공공 녹지를 고가 보도로 연결하는 이 프로젝트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보행 경로를 다양화하는 핵심 전략으로 지면을 보행자에게 돌려주고자 했다. 즉 지면이 연결 통로인 동시에 하나의 장소, 기반 시설, 나아가 광장으로 기능하게 했다. 보행로는 크게 동쪽과 서쪽으로 나뉜다. 동쪽은 녹지 중심의 편안한 보행로인 반면, 서쪽은 도시적이며 상업적 성격의 보행로다. 포레스트 워크Forest Walk, 삼차원 데크Three-dimensional Deck, 선형 광장Linear Square, 에탈라저 패시지Etalage Passage 등 네 개의 보행로는 건물을 리본처럼 휘감아 존재감을 드러낸다. 보행로는 퇴계로에 다다라 삼각 광장Triangular Square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며 다채로운 활동이 펼쳐지는 공공 공간의 역할을 수행한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등을 통해 보행로와 건물 옥상을 연결하고 농구장, 등반용 암벽, 루프톱 바 등을 설치해 독특한 전망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이미지 스케이프] 무한을 체험하다
강렬한 노란색 바탕에 검정 땡땡이가 칠해진 커다란 호박. 베네세하우스, 지추미술관, 이우환미술관 등으로 유명한 예술의 섬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소개할 때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호박, 많이들 보셨죠? 저는 그 이미지를 처음 봤을 때 지역 특산물을 주제로 한 조형물인가 보다 했었는데,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니 조금 다른 맥락이 있더군요. 그 호박은 일본 출신의 세계적 작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Kusama Yayoi(1929~)의 작품입니다. 쿠사마 야요이는 강박증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강박증, 편집증, 불안증 등 각종 정신 질환으로 고생했다고 합니다. 어둠 속에서 공포와 같은 영상이 반복적으로 밀려왔는데요, 끊임없이 나타나는 물체를 모두 벽에서 끄집어내려고 스케치북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에는 유난히 유기적으로 연결된 망net과 점dot으로 구성된 것이 많습니다. 강렬한 색과 원형의 반복적 형태가 인상적인데, 그런 이미지가 작가의 괴로움의 산물이라고 하니 작품들이 또 다르게 보입니다.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그들이 설계하는 법] 공동 작업
나와 자주 일하는 한 건축가는 장소적 맥락과 동떨어진 채 설계가의 자의식이 과하게 드러나는 작업을 매우 싫어한다. 그는 장소의 물리적·비물리적 맥락을 정리해 용도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 디자인에 적합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내가 일하고 있는 JCFO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의 많은 디자이너는 때론 맥락과 연관성이 적더라도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한—때론 화려한— 공간 디자인을 선호한다. 건축은 도figure고 조경은 지ground라는 특성상 전자는 그만의 것을 드러낼 때가, 후자는 맥락에 기댄 설계 해법이 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현상은 꽤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처해 있는 이런 이질적 환경은나의 설계하는 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일하고 일관된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깊이 있는 영역을 굳혀 나가는 것과 열린 방식을 바탕으로 더 넓은 영역을 탐구해 나가는 것 중 어느 쪽이 바람직한 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앞에서 언급한 이질성은 나의 방법론을 아직 후자에 머물게 한다. ‘나’의 설계하는 법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오직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에 의해, 조경만이 아닌 미술, 도시, 건축의 영향으로 그 색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번 글에서는 나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그들 속 나의 이야기, 조경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다른 분야와 함께한 공간 디자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다섯 명의 디자이너가 공동 작업했던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공모’의 작업 과정(『환경과조경』 2015년 11월호 참고), 그리고 내 주변 디자이너 두 명의 이야기다. 세종대로 공모전은 상하 위계 없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진행한 작업으로,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에 참여했는지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다수의 프로젝트에서 나와 공동 작업한 상반된 스타일의 두 디자이너 이야기는 그들 사이의 중간자와도 같은 내 모습을 보여주기에 적당할 것이다. ...(중략)... 전진현은 스튜디오 MRDO(Studio MRDO)를 공동 설립해 조경뿐 아니라 더욱 확장된 영역에서 디자인을 실험·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과 하버드 GSD에서 조경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GSD 입학 전 신화컨설팅에서 근무했고, 현재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조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보더스: DMZ 지하 대중목욕탕(Borders; Korean DMZ Underground bath house Competition),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설계 공모, 서울 도시 디자인 공모전 등 다수의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www.studiomrdo.com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형태와 기능의 통합 1
미국의 건축가로 시카고학파, 모더니즘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은 건축의 형태가 목적하는 기능에서 비롯되어야 함, 즉 “형태는 항상 기능을 따른다Form (ever) follows function”고 주장했다. 동시대의 디자인 실천 중에는 기능과는 무관한 형태 본위의 결과물로 보이는 것도 있다. 그렇지만 형태가 형성된 배경이나 과정을 살펴보면, 여전히 기능에 의해 결정되었거나, 기능에 맞추어 변형을 주었거나, 또는 기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안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사진의 헤링본herringbone 패턴 콘크리트 블록 포장을 눈여겨보자. 회색 톤으로 색상을 제한해 정돈된 도회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한편, 악센트 블록의 명도와 노출 골재의 밀도를 조절해 미묘하게 변화를 주었다. 중앙에 점선처럼 나열된 짙은 색 블록을 기준으로 좌우 블록의 크기가 서로 다르다. 왼쪽의 콘크리트 블록은 약 15 × 60cm 크기고, 오른쪽 것은 그 1/4인 7.5 × 30cm 크기다. 양편에 배치된 블록의 크기 차이를 중재하기 위해, 경계를 따라 나열한 짙은 색의 블록 외에도 7.5 × 15cm 크기로 작게 재단된 블록을 추가했다. 이와 같이 다른 크기의 포장 블록을 제안했던 배경을 살펴보자. 초기 디자인 단계에서는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수변 산책로를 필요한 프로그램에 따라 크게 세 개의 열로 구획했다. 가장 안쪽의 테라스The Terraces에는 인접한 건물과 연계해 레스토랑의 야외 좌석, 나무 그늘, 소규모 행사를 열 수 있는 장과 무대 등을, 호수와 인접한 경계The Lake Edge를 따라서는 앉아서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벤치와 플랜터, 작은 키오스크 등을, 그리고 중앙의 약 6m 폭의 길The Promenade은 수직적인 요소를 배제한 통행로를 제안했다. 동일한 헤링본 패턴의 포장을 적용하면서도 테라스와 호숫가에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콘크리트 블록을, 중앙의 통행로에는 작고 촘촘한 밀도의 블록을 배치했다. 이는 시지각적인 경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사람이 많이 몰리거나 유지 보수를 위한 차량의 통행할 때에도 블록이 쉽게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디자인이었다. 초기 디자인보다 높은 강도의 포장을 위해 원 제안의 평행사변형 꼴 콘크리트 블록은 직사각형으로 조정되었지만, 프로그램에 따라 변화하는 형태의 포장 아이디어는 그대로 실현되었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양기대 광명시장
2016년 연간 유료 관광객 142만 명, 시 수입 85억 원, 400여 개 일자리 창출, 개장 5년여 만에 한국 100대 관광지 선정, 43억 원에 매입한 부지 가치가 2,000억 원으로 상승, 올해 관광객 200만 명 목표. 화려한 성적의 프로젝트, 광명동굴이다. 그러나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의 ‘관급’ 도시재생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기특한 사례가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수도권에 그만한 위력을 가진 관광지는 여럿 있다. 캐리비안 베이와 용인 한국민속촌이 그렇다. 그럼에도 광명동굴에 ‘기적’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 있다면, 프로나 대기업이 아니고 서울시나 광역시도 아닌 작은 베드타운 위성 도시 광명의 공무원과 지자체가 벌인 일이기 때문이다. 각종 지원금을 뺀 현재까지의 총 투자액 570억 원, 광명동굴은 이미 손익 분기점을 넘겼다. 입장료 등으로 벌어들인 세수는 올해 초 광명시가 채무 제로를 선언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지방 자치는 양날의 칼이다. 포퓰리즘과 재선을 위한 혈세 낭비의 축제, 허황되고 수준 낮은 사업, 단기적 사고의 부양책, 뿌리 깊은 부정부패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지방 자치에 근본적 회의감이 들게 한다. 잘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실제로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단체장의 역량과 청렴도라 할 수 있다. 소문으로만 듣던 광명동굴에 가 보았다. 외부 공간에서부터 내부 콘텐츠, 시공의 디테일, 운영 상태까지 하나하나 뜯어 살펴보았는데, 웬걸, 상당한 수준이었다. 대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안 하니 못한 지자체 사업이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아니 어쩌면 세계적으로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장소, 이런 희귀한 공적 공간을 만든 브레인이 누구일지 궁금했다. 뜻밖에 그 주인공은 괴짜 예술가나 특이한 사회 사업가가 아니라 광명의 단체장 양기대 시장이었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52호(2017년 8월호) 수록본 일부
[명사의 정원 생활] 다산 정약용, 정원에서 길러 낸 맑고 고상한 삶
다산,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조선 역사상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로 칭송받는 인물이다. 과학, 의학, 공학에서부터 철학, 경제, 사회, 문학, 그리고 시와 그림까지 넘나들며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다산이 ‘조선사 최고의 학자이자 개혁적 경세가’가 된 배경에는 걸출한 인물 두 사람과의 인연과 만남이 있다. 다름 아닌 성호 이익과 정조대왕이다. 성호가 다산에게 경세치용과 사회 개혁의 꿈을 꾸게 한 이라면, 정조는 그것을 실현할 수 있게 해 준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16세부터 성호의 책을 읽은 다산은 그를 평생 마음의 선생으로 삼고 공부하며 실학 사상을 계승하려 애썼다. 20대의 젊은 다산이 지닌 재능을 간파한 정조는 규장각으로 불러 여러 학자와 교유하며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초계문신抄啓文臣’, 일종의 ‘정조 스쿨’에 선발되어 여러 차례 정조와 대면하며 학문을 논한 것은 다산의 성장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다산은 실학을 바탕으로 한 경세치용의 정책 제시와 함께 거중기와 한강 배다리 등의 실용 기술로 정조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결과적으로 다산의 일생은 정조의 통치 시기 전후로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다산의 대표 정원들 일생을 통해 다산이 만들고 즐긴 정원은 여럿이다. 어릴 적부터 고향 능내 인근의 한강변과 수종사 등의 명소를 찾아 자유롭게 노닐며 감수성을 키웠던 다산은 장성하기 전까지 부친을 따라 다니며 전국 각지의 이름난 경승을 즐겼다. 17세에는 아버지가 화순현감으로 근무하던 관아 주변의 정자 차군정此君亭에서 지역 선비들과 함께 섬돌과 잔디로 정돈된 단 위의 노송과 대숲의 바람 소리를 즐기기도 했다. 부친이 임지를 예천으로 옮긴 19세에는 지역의 누각과 정자를 조사하고는 관아 동측에 폐허로 남아있던 정자 반학정伴鶴亭을 발견하여 수리한 후 수목과 초화 가득한 그곳을 자신의 공부방으로 삼았다. 22세에는 남산 회현동 재산루로 이사했는데, 당시 그곳은 남산 북사면의 승지로서 경치가 아름다웠던 곳이었다. ...(중략)... 성종상은 서울대학교에서 조경을 공부한 이래 줄곧 조경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지금은 대학에서 조경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선유도공원 계획 및 설계, 용산공원 기본구상,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마스터플랜, 천리포수목원 입구정원 설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한국 풍토 속 장소와 풍경의 의미를 읽어내고 그것을 토대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서 조경 공간이 지닌 가능성과 효용을 실현하려 애쓰고 있다. *환경과조경352호(2017년 8월호)수록본 일부
[시네마 스케이프] 토니 에드만
놀랍고 신선한 이 영화는 무한 경쟁 시대를 사는 딸에게 아버지가 보내는 위로를 농담의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었다. “자기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애틋하니 좋아할 거야”라는 동네 친구의 추천에 내심 기대했다. 바쁜 딸을 졸졸 따라 다니며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일삼는 아버지의 행동,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세 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도 참을성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난 후에야 영화 속 상황들이 떠올랐다.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하며 옷매무새를 고칠 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갈 때, 만약 아버지가 내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하실까. 우리 딸 잘 살고 있구나, 그러실까? ‘토니 에드만Toni Erdmann’은 독일 영화지만 주요 배경은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Bucharest다. 루마니아라면 코마네치라는 전설의 체조 선수밖에 모르는 터라 영화를 두 번째 볼 때는 생소한 거리나 공원 풍경에 시선이 꽂혔다. 영화 속 대화나 상황은 서유럽이 시장 경제에 뒤쳐진 동유럽 국가들을 어떻게 보는지도 짐작하게 한다. 루마니아는 공산 정권 붕괴와 혁명 이후 2000년대 들어서야 EU에 가입했으며 자금 지원과 외자 유입에 따른 투자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다. 주인공 이네스는 석유 관련 회사의 컨설팅 일로 부카레스트에 와 있다. 개발 도상국의 기업 개혁을 추진하는 선진국에서 온 외부자인 셈이다. 올림머리에 타이트한 검은색 정장과 하이힐을 갖추고 운전기사와 비서의 수행을 받는 모습, 언뜻 보면 성공한 직업인이다. 실상은 고객의 눈치를 보며 기분을 맞춰야 하고 상사에게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불편한 업무도 해내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고단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자신의 욕망보다는 사회적 책무를, 자신의 윤리적 판단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헛기침으로 진심을 감춰보지만 스트레스로 자주 미간을 찡그린다. 늘 잠이 부족해 차만 타면 졸기 일쑤다. 이네스는 그런 생활에 대체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지는.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보고 나서 기억되는 영화, 볼 때마다 다른 것이 보이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겉으로 드러난 서사보다 그 사이에 숨겨진 맥락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영화를 보는 독자가 있다면, 마치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기분이 들면 좋겠다. 디테일과 스포일러일지 모르는 클라이맥스 부분을 묘사한 이유다. *환경과조경352호(2017년 8월호)수록본 일부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경험의 다성학
2016년 학술정보 통합서비스 디비피아DBpia의 사회·과학 분야 최다 검색 키워드로 ‘여성혐오misogyny’가 선정되었다. ‘혐오’라는 번역이 적합한가 그렇지 않은가, 어떤 사례에 여성혐오라는 틀을 씌우는 일에 동의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우선 차치한다 하더라도, 이는 지난 한 해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이 얼마나 뜨거운 이슈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성혐오’는 ‘혐오’ 또는 ‘반감’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miso-’와 여성을 뜻하는 ‘-gyny’가 합쳐진 말이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우리말 ‘혐오’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그런 의미뿐 아니라, 여성의 성적 대상화,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 폭력, 차별, 남성우월주의 등 매우 다양한 양태의 여성에 대한 편견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고대 신화나 설화 등이 여성혐오적 시각을 종종 담는다는 것, 그리고 수많은 탈식민주의 학자, 페미니스트 학자가 기존 서양 철학과 사상, 역사가 주로 서양-백인-남성의 시각에서 기술·구성되었음을 지적한 것은 누차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생산 관계가 문화, 예술, 종교 등의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 말하며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외친 마르크스조차 그의 저작에서 젠더적 권력 구조에 무감각한 시각을 드러낸다는 비판을 받는데, ‘보편’, ‘이성’, ‘객관’을 표방하는 학문이 얼마나 많은 차이와 권력 구조를 간과하는지에 대해 무시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주의에서 입장론Standpoint theory은 이러한 남성 중심의 기존 사회와 학문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주변화된 계층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세계를 정확히 인식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여성 학생이나 학자 자체가 흔하지 않던 시절 사회학자 도로시 스미스Dorothy E. Smith는 남성 위주의 아카데미아에서 혼란을 겪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사회학에 입장론을 제기하며, 이를 인식론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동물학, 철학, 영문학,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두루 섭렵해 1980년대에 ‘사이보그 선언문’을 쓰기도 한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는 영장류학, 생물학 등 자연 과학, 즉 하드 사이언스hard science 역시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왔음을 밝힌 바 있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환경과조경352호(2017년 8월호)수록본 일부
‘보이드: 공간의 유희, 경험의 확장’ 전
버튼을 누르면 공기가 주입되어 부풀어 오르는 비닐 큐브, 하얀 구름을 떠오르게 하는 패브릭 미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때로는 작품 속을 거닐며 ‘공간 인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품게 하는 작품들이 현대카드 스토리지Storage(이하 스토리지)에 전시됐다. 바로 ‘뉴멘/포 유즈Nemen/For Use’의 ‘보이드Void: 공간의 유희, 경험의 확장’ 전(이하 보이드 전)이다. ‘보이드’는 빈 공간을 의미하는 건축 용어로, 전시 관계자는 보이드 전을 통해 “우리의 인지 능력과 지각이 확장되고 나아가 현대 예술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해 6월 개관한 스토리지는 동시대 미술의 의미 있는 활동을 담는 임시 ‘보관소’이자, 예술적 가능성을 지닌 열린 ‘창고’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 디자인, 필름 등 폭넓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디자인 진화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추적: 현대카드 디자인의 기원Traces: The Origins of Hyundai Card Design’ 전, 개성 넘치는 드로잉과 파격적 설치 작업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슈리글리David Shrigley’ 개인전에 이어 세 번째로 마련된 보이드 전은 ‘뉴멘/포 유즈’의 첫 국내전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스벤 욘케Sven Jonke, 크리스토프 카즐러Christoph Katzler, 니콜라 라델코빅Nikola Radeljkovic 등 세 명의 아티스트로 구성된 ‘뉴멘/포 유즈’는 테이프, 실, 끈, 그물 등 일상적 소재를 활용한 장소특정적 작업으로 유명하다. 형식과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아 덴마크 디자인 센터(2015), 파리 팔레 드 도쿄(2014),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특별전(2014) 등의 유명 전시에 초대되어 활동해 왔다. 공간의 유희, 경험의 확장 주요 작품 세 점과 관련 모형, 영상물이 스토리지 지하 2층과 3층에 설치되었다. ‘스트링 모델 2×2String Model 2×2’는 평소에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지만, 버튼을 눌러 PVC 포일foil 구조물 내부에 공기를 주입하면 정육면체 형태로 부풀어 오른다. 이때 벽체에서 뻗어 나온 푸른 실이 작품을 감싸 구조물을 지탱하며 형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를 공기의 드나듦에 따라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작품의 물성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움직이는 조각’이라 표현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52호(2017년 8월호)수록본 일부
양재고개 녹지연결로 국제설계공모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개설되며 단절된 우면산 양재고개가 녹지축으로 다시 연결될 예정이다. 지난 4월 14일 서울시는 ‘양재고개 녹지연결로 국제현상설계공모’를 개최했다. 6월 16일 김인철 심사위원장(아르키움 대표)과 김상효 교수(연세대학교), 송인주 연구위원(서울연구원), 김혜란 대표(종합건축사사무소 예일), 디에트마르 페이흐틴허르 대표Dietmar Feichtinger(Dietmar Feichtinger Architectes), 이경환 대표(에이오와이)가 심사를 진행했다. 국내 27팀, 국외 27팀 등 총 54팀의 작품 중 당선작으로 이바네 크스넬라슈빌리Ivane Ksnelashvili(I.KSNELASHVILI)의 ‘슬로프 워크SLOPE-WALK’가 선정됐다. 2등작에는 임우진(AEV Architectures Seoul)의 ‘나무의 방주Ark of trees’, 3등작에는 위진복(UIA 건축사사무소)의 ‘우마랑牛馬廊’, 4등작에는 박윤진(오피스박김)의 ‘토포-리바이벌Topo-Revival’, 5등작에는 알렉산데르 얀코비치Aleksander Jankovic(AJAA)의 ‘양재고개 에코 브리지Yangjaegogae Eco Bridge’가 선정됐다. 김인철 심사위원장은 “수상작들은 단순히 단절된 녹지를 연결하는 것을 넘어 자연과 인공의 관계를 복원하는 상징적 풍경을 제시하고 있다”며 “공학적 접근과 개념적 의도를 접합해 완성한 작품이 다수 제출되었으며,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와 형식으로 표현을 절제한 작품이 많았다”고 심사 총평을 밝혔다. ...(중략)... *환경과조경352호(2017년 8월호)수록본 일부
랜드스케이프 디자인과 공공 미술: 새로운 가능성
지난 7월 12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제24회 조경디자인캠프’의 세 번째 특강이 진행됐다. 이날 ‘랜드스케이프 디자인과 공공 미술: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홍보라 디렉터(갤러리팩토리)는 시카고 시 문화부 예술 지원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현재 이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 미술이 지닌 ‘공유’의 특성을 이용해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해외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홍 디렉터는 우리나라 대중이 예술을 타지화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에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예술을 만들고자 20년 전부터 정기용 건축가, 배영한 작가 등 여러 전문가와 함께 학술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연구 세미나를 열고 있다. 홍 디렉터의 말에 따르면 최근 공공 미술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05년을 시작으로 3년마다 열리고 있는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과거 공원에 예술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공공 미술을 오브젝트로 풀어내는 작품이 주를 이뤘다면, 현재는 안양을 대상으로 한 영화를 만드는 등 공원에 현존하는 자원을 활용하고 이를 기억하는 방식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며 물리적 실체의 구축에서 보이지 않는 공간의 맥락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공공 예술의 접근법이 전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략)... *환경과조경352호(2017년 8월호)수록본 일부
[편집자의 서재] 실내인간
“자유로움도 연습을 해야 나오는 거거든요.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자신도 모르게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여졌으면 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꾸미기 마련이거든요.” 아직 불 같은 더위가 찾아오지 않은 여름, 인터뷰를 위해 만난 안무가 K가 들려준 이야기다. 각종 질문에 대한 답을 한참 쏟아낸 그가 마른 목을 축이는 동안, 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나는 과연 어떤 순간에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할까. SNS가 발달하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어쩌면 표현이라는 단어보다 보여준다는 말이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방문한 핫한 카페나 음식점, 때로는 나만 아는 공간의 사진을 올려 일상생활을 노출하고, 취향과 관심사는 티켓이나 테이블에 놓인 책 사진 등으로 대체된다. 구구절절 의견을 늘어놓는 대신 노래 가사나 소설의 문구 하나를 적어 놓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왜곡하는 법을 익힌다.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을 찍기 위해 촬영 버튼을 수차례 두드리고, 불필요하다 느껴지는 요소는 자르기 도구로 깔끔하게 도려낸다. 이런저런 의도로 정제된 후에야 사진은 우리를 꾸며주는 일종의 포장지가 되어 SNS에 업로드된다. 그리고 여기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온 인생을 자신을 포장하는 데 사용한 남자가 있다. 수년간 제 이름 대신 베스트셀러 작가 방세옥으로 살아온 『실내인간』의 김용휘. 『실내인간』의 작가 이석원을 처음 만나게 해준 건 친구의 MP3 플레이어 속 노래 ‘나를 잊었나요’(언니네 이발관, 2002)였다. 그 당시 이석원은 내게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로, 화려한 기교 대신 공들여 만든 소박한 기타 선율에 서정적인 노랫말을 얹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산문집 『보통의 존재』(2009)를 발표했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서점에 들러야 했다. 만약 그가 산문집의 탈을 뒤집어쓰고 ‘꿈을 포기하지 마라’, ‘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를 외치는 자기계발서를 썼다면, 더 이상 그의 노래를 사랑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걱정과 달리 『보통의 존재』는 자신의 내면과 일상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간, 이석원 또한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아주 보통의 사람임을 보여주는 글이었다. “누구나 자신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제로 오르기 힘겨운 산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다 … 그때가 되면 마지막으로 몸부림도 쳐보고 온몸으로 거부도 해보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확인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 그 잔인한 일 말이다.”(각주1)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담담한 어조로 조금 부끄러울 수 있는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풀어 놓는다. 누구나 해봤을 그 고백은 ‘언니네 이발관’의 노랫말과 닮았을 뿐 아니라 이석원 그 자체다. 글 구석구석 녹아있는 이석원의 모습은 4년 뒤 내놓은 장편 소설 『실내인간』에서도 발견된다. 주인공 용우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 제롬,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닌 용휘와 그 곁을 지키는 소영 모두에게서. 그중 용휘는 이석원이 말하는 솔직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인물로, 사랑하는 여자를 돌아오게 만들기 위해 자신이 쌓아올린 책 탑 안에 갇힌 ‘실내인간’이다. 책을 내는 족족 히트를 치는 소설가 방세옥이 되었지만, 글을 쓰는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며 매일 서점을 찾아가 판매 순위를 확인하며 불안에 떤다. “용휘는 집에만 머무르는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며, 저녁마다 서울 전역의 서점을 순찰하는 넓은 행동반경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이 정해놓은 틀 밖으로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인물이기에 결국엔 그는 갇혀 있는 사람”(각주2)일 수밖에 없다. 이석원은 이를 통해 무언가에 갇히고 옥죄어 사는 용휘의 모습이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평범하면 사랑하는 여자에게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강박감에 괴로워하며 살았지만, 결국 여자가 팔리지 않는 책을 쓰는 무명작가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접하는 용휘의 모습이 『보통의 존재』에서 ‘보통’을 외치던 이석원과 겹쳐진다. 사실 『실내인간』은 『보통의 존재』를 좋아한 이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글일 수 있다.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필치는 여전히 섬세하지만, 구성이 조금 헐겁고 소설의 핵심인 용휘의 비밀은 엄청난 반전이라기엔 아쉬운 감이 있다. 그래도 『실내인간』을 읽는 내내 즐거웠던 이유는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석원의 흔적 때문이었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과는 영원히 못 헤어져.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각주3)라고 말하는 소영에게선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하던 이석원이, 피고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존재가 되는 것만이 가치 있는 삶인 양 스스로를 몰아붙여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늘 부끄러워했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타인의 삶 또한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경멸하였다 … 따라서 본 법정은 피고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여러 정상을 참작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피고 김용휘, 사형”(각주3)이라는 판결문에서는 음악인으로서 고뇌하는 이석원이 있다. 책을 읽는 과정은 마치 이석원의 흔적을 찾아 텍스트 속을 거니는 여행과도 같았다. 지난 7월 이석원은 9년만에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 ‘홀로 있는 사람들’(2017)을 발표했다. 그는 이번에도 평온하게 자신의 마지막을 노래한다. 작곡가로서 한계에 부딪쳤음을 풀어낸 ‘홀로 있는 사람들’의 가사로 ‘편집자의 서재’의 문을 닫는다. ‘ 노래 / 언젠간 끝내야 하지만 / 아직 나는 여기 서 있네 / 그래 / 언젠간 끝나고 말겠지 / 그래도 난 아직 여기에 ’ 1. 이석원, 『보통의 존재』, 달, 2009, p.148. 2. “『실내인간』 이석원, ‘장편소설은 100분짜리 노래 한 곡을 만드는 일’”, 교보문고 인터뷰 http://news.kyobobook.co.kr/people/writerView.ink?sntn_id=7601 3. 이석원, 『실내인간』, 달, 2013, p.257. 4. 위의 책, p.271.
[CODA] 팔리는 기획?
잘 팔리는 기획의 비법을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진 않았다. 우연히 예약 판매 중이던 디지털 콘텐츠 “팔리는 기획을 배운다–잡지 BRUTUS & POPEYE”를 봤을 때, 구매 버튼을 누른 건 ‘팔리는’이란 수식어보다는 브루투스BRUTUS란 이름이 주는 오래된 설렘 때문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한번 다녀 보고 싶은 잡지사가 일본의 『카사 브루투스Casa BRUTUS』였다. 2000년대 초, 처음 건축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당시 편집부는 좁은 전문지 시장에서 어떻게 독립적이고 의미 있는 잡지를 지속가능하게 펴낼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였다. 그때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잡지 『카사 브루투스』는 대안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물론 일본에는 『신건축新建築』이나 『a+u(Architecture and Urbanism)』 같은 (정통) 건축ㆍ도시 전문지도 있었고, 그 잡지들을 구독하는 한국의 건축가, 조경가도 많았다. 그렇지만 2002년 8월 발행된 『카사 브루투스』 안도 다다오 특집호가 10만 부 팔렸다는 풍문이 전설처럼 들려왔다(최근 발행 부수는 7만5천 부를 웃돈다고 한다). 당시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라이프스타일 잡지 H의 판매 부수는 그의 몇 분의 일에도 못 미쳤다. 일본의 인구수가 우리보다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잡지가 10만 부 정도 팔리려면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손에도 그 잡지가 들려야 한다. 건축가와 건축에 대한 이야기에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다. 즉 『카사 브루투스』가 전문가에게는 전문지로, 대중에게는 대중지로 다가갔던 것이다. 물론 일본의 책 읽는 인구수가 많다는 점, 일본인이 만화나 잡지를 유난히 좋아한다는 점, 그리고 미술이나 건축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이 높고, 또 무엇보다 일본 내에 스타 디자이너가 있다는 점 등이 주요 배경일 것이다. 그때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키워드가 바로 ‘대중성’이었다. 어떻게 전문적인 콘텐츠를 잘 기획해 전문가뿐만 아니라 대중도 만족시킬 수 있을까. 대중적 감각을 장착해 잠재적 독자에게 어필하는 것이 좁디좁은 분야의 저변을 넓혀 가며 전문지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2000년 창간된 『카사 브루투스』는 “아름다운 생활을 디자인하는 Life Design Magazine”을 표방하며, ‘디자인’이란 주제를 대중에게 쉽고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한다. 이 잡지는 매호 하나의 테마를 독특한 제목으로 다루는데, ‘디자인이 좋은 가전’이나 ‘아름다운 조명 기술’과 같은 제품 디자인, ‘즐거운 주방’이나 ‘수납 방식’같은 인테리어, ‘현대 건축의 기초 지식(SANAA의 모든 것)’과 같은 건축(가), ‘진화하는 고도! 교토’ 혹은 ‘일본 재생의 참고서’ 같은 도시(재생)까지 다방면의 디자인을 다루고 있다. 모 회사인 매거진하우스는 『브루투스BRUTUS』(1980년 창간), 『뽀빠이POPEYE』(1976년 창간) 등 10여개의 라이프스타일지를 발행하고 있다. 이 잡지들은 호별로 가격도 다르게 매겨지고, 인기 있는 호는 웃돈이 붙어서 인터넷 중고 서점에서 유통되기도 한다. 새내기 기자의 눈에는 요리나 여행부터 건축이나 도시까지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디자인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루는 잡지가 무척 근사해 보였다. 한 컷 한 컷 세련된 방식으로 연출된 사진, 일러스트를 활용한 편집 디자인, 오랜 취재를 통해 만들어진 정보 등. 물론 피사체인 작품 자체가 훌륭해야 하겠지만, 그 내용만큼이나 사진이나 편집 디자인이 멋져야 눈길을 잡아끌어 독자에게 내용을 읽힐 수 있다는 잡지의 숙명을 강렬하게 느끼게 했다. 잡지에 쓸 여러 사진을 구하거나 작품 촬영을 사진작가에게 의뢰하기 위해 빠듯한 예산 안에서 전전긍긍하는 우리의 상황과는 딴판처럼 보였다. 그 시절 잡지를 이끌어가야 했던 편집장은 그 괴리를 더 크게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풍 공간을 만들어 소니 TV를 디스플레이했던 지면을 인상적인 기사로 꼽는다. 참신한 기획이 광고까지 연결된 사례다. 광고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지면을 만들려면 자본이 바탕이 되어야 함은 분명하다. 20~30대 남성을 타깃으로 하는 『브루투스』의 니시다 젠타 편집장은 “광고를 선전의 소재가 아닌 콘텐츠의 하나로 이해”하자고 말한다. 광고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를 생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창구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브루투스의 버릇, 습관을 이해해주지 않으면 타이 업tie-up은 불발됩니다. 하지만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기리쿠치(관점, 수법)로 문화를 보여주는 우리들의 방식을 인정해주고 있습니다.”(각주1) 물론 40년간 대중과 함께 호흡했던 미디어 기업의 역량을 상황이 다른 나라의 전문지에서 따라하는 게 쉽지도 않고 적절한지도 따져봐야겠지만, 광고 없이 잡지를 꾸리기 힘든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기획을 끌어올리고 거기에 잡지의 취향과 지향이 녹아 들도록 하는 것은 부럽기도 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방식이다. 이번 달 『카사 브루투스』의 주제는 ‘동물원과 수족관’이다. 푸른 잔디 위에서 대나무를 나란히 입에 물고 있는 판다 모자의 사진이 실린 표지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본문에서는 동물원과 수족관의 스타일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기도 하고, 역사가 오래된 우에노 동물원을 짚어보는 기사도 있으며, 디자인으로 동물원을 보기 위해 건축가나 동물원 디자이너의 글을 싣기도 했다. 전문적인 내용의 호흡은 짧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시원스런 사진과 함께 쉽게 풀어 놓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평소 긴 호흡의 글을 읽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은 전문가나 비전문가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카사 브루투스』의 리듬 또한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는 상업지의 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정보가 차고 넘치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이 잡지들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까? 『브루투스』는 2013년 9월부터 웹 콘텐츠를 발행했다. 『브루투스』가 택한 전략은 아날로그의 디지털화가 아니라 잡지는 잡지대로 지키되, 웹은 서브 콘텐츠의 장으로 활용한다. 고양이 특집을 꾸리면서 펫 푸드 회사와의 협업을 궁리하고, 라이프스타일 특집을 하면서 가구 혹은 가전제품 브랜드 안에서의 콘텐츠를 발굴하는 능력이 디지털 시대 종이 잡지가 살아가는 방식이다.(각주2) “잡지에 새로운 정보는 필요 없습니다. 잡지에 필요한 건 생각해보지 못한 정보나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입니다”(각주3)라는 니시다 편집장의 말을 읽으면서, 잡지의 힘은 역시 기획이며,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고 믿고 싶다. 1. 정재혁ㆍ손혁, “잡지를 가장 잡지답게 하는 법: 성공 비결, 그리고 철학(2)”, ‘팔리는 기획을 배운다–잡지 BRUTUS & POPEYE’, Publy, 2017년 7월. 2. 같은 글. 3. 정재혁ㆍ손혁, “편집장이 말하는 잡지”, ‘팔리는 기획을 배운다–잡지 BRUTUS & POPEYE’, Publy, 2017년 7월.
[PRODUCT] (주)디자인파크개발의 발로 구르는 스윙벤치
(주)디자인파크개발의 캠핑 시설물 제작 브랜드인 캠포레스트CAMP4REST가 새로운 원리로 작동하는 스윙벤치를 출시했다. 누군가 밀어주어야 탈 수 있는 기존의 스윙벤치와 달리, 혼자서도 발판을 밀어 벤치를 움직일 수 있는 아이디어 상품이다. 땅을 차지 않아도 벤치를 움직일 수 있어 바닥 파임, 잔디 훼손을 방지하는 별도의 포장 마감도 필요하지 않다. 차양(지붕 천)을 벨크로 타입으로 제작해 손쉽게 씌웠다 벗길 수 있게 했다. 추후 다양한 색상의 차양을 출시해 별도 구매가 가능하게 할 계획이다. 소비자가 쉽게 조립할 수 있는 DIY 방식이 강점이며, 구동에 많은 힘이 들어가지 않아 관절이 약한 노인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현재 해외 특허 PCT No. PCT / KR2017 / 1679와 국내 특허에 출원한 상태이며, B2G, B2B, B2C 등 여러 시장에 선보일 수 있도록 디자인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TEL. 02-2665-6006 WEB. www.designpar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