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관리
폴더명
스크랩
PREV 2017 Year NEXT           PREV 03 March NEXT

환경과조경 2017년 3월

정보
출간일
이매거진 가격 9,000

기사리스트

[에디토리얼] 광장의 계절을 보내며
광장의 계절이다. 지난 가을과 겨울 광화문광장을 촛불로 타오르게 한 집회 참가자 연인원이 3월 초면 1,5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 차디찬 계절의 뜨거운 광장을 한 외신은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민주주의라 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도시 문화에서는 낯선 공간이었던 광장에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호 특집 ‘광장의 재발견’의 배경에는 최근의 국정 농단과 ‘광화문광장 현상’이 광장이라는 공간과 문화에 대한 다각도의 해석을 요청하고 있다는 진단이 자리한다. 그러나 도시의 그 어느 곳보다도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와 활동이 교차하는 공간인 광장을 어떻게 설계하고 경영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이번 특집을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이번 광장 기획은 또한 월간 『환경과조경』이 공동 주최하는 제14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과 켤레를 이룬다. 공모전 취지문을 아래에 옮긴다. “광장보다 골목과 길이 더 친숙했다. 꽤 오랫동안 광장은 우리의 것이 아닌 서구의 것이었다. 광장과 같은 빈 땅을 필요로 하는 집단적 종교 활동도 없었고, 군중의 집합이 동반되는 시민 사회의 성숙 역시 뒤늦게 발현되었다. 사람들은 가로의 일종인 선형의 시장에서 만났고, 아이들은 골목에서 뛰어 놀았다. 개인이나 마을 단위의 대소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마당이면 족했다. 그도 아니면 사람들은 당산나무 그늘을 찾았다. 우리네 광장의 역사가 짧은 까닭이다. 한강 백사장과 여의도광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관제 집회와 종교 집회의 시기를 거쳐, 본격적으로 광장이 주목받게 된 계기로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꼽지 않을 수 없다. 2002년 월드컵 당시의 대규모 거리 응원도 광장의 흥분을 온 국민에게 선사했다. 하지만 세기가 바뀌기 시작할 무렵부터 전 세계적으로 광장은 공원과 유사한 하나의 오픈스페이스로 변신하며, 그 고유한 특질을 잃어갔다. 공원 같은, 광장 아닌 광장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고,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의도광장은 여의도공원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서울광장엔 잔디가 깔렸다. 청계광장 역시 일상적 이용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도, 시민도 비일상적인 대규모 집회용 광장보다는 녹색 옷을 입은 일상적인 오픈스페이스를 선호한 탓이다. 광활한 비움보다는 불확정적이며 유연한 설계가 더 각광받았다. 그 사이 오프라인에서의 직접적 만남은 온라인상에서의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 이른바 SNS로 대체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난 것에 비례해서 광장에는 녹음을 드리우는 녹색의 면적이 커져갔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광장의 의미와 쓰임은 무엇일까? 혹은 무엇이어야 할까? 광장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신선한 모색을 초대한다. 작아져만 가던 광장을 다시 호출한, 슬프고도 우울한 시국은 ‘광장의 재발견’에서 절대적인 단서가 아니다. 우리는 이 엄중한 시기를 지나 다시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야 하니까.” 특집의 첫 번째 글 ‘아고라포비아’에서 박승진 소장은 설계자들이 갖는 광장공포증을 다루지만, 광장 설계를 둘러싼 거의 모든 핵심 쟁점들도 샅샅이 조회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광장은 대중 민주주의의 상징이면서 전체주의의 통치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엇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광장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사용된다.” 그는 광장공포증을 극복하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며 글을 맺는다. “좋은 광장을 만드는 데 있어서 위대한 설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열정적인 협력 그룹, 뛰어난 집단지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편집자로서 가장 굵은 형광펜을 그은 문장은 “광장은 다수의 군중을 위해 존재하지만, 외로운 도시 산책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어쩌면 도시에 더 많은 광장이 필요한 이유다”였다. 전상인 교수는 ‘광화문광장인가, 광화문극장인가?’에서 도시의 계획·설계와 문화라는 관점으로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의 몇 가지 쟁점을 검토한다. 이 글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광화문광장은 광장이 아니라 극장”이라는 주장이다. 광화문광장은 “그 자체의 전통으로 빛나는 시민의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연출과 기획을 기다리는 미장센”이며, 그것이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론의 장이 될지, 푸코가 말하는 권력의 장이 될지 선택은 우리의 몫”이라는 해석은 토론을 초대한다. 반면, ‘광장, 군중, 이벤트’에서 김세훈 교수는 최근의 평화 집회가 광장이라는 도시 공간을 재발견할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고 진단하고, “다양한 집단의 사회적 활동을 풍부하게 담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즐겁고 쾌적한 광장, 그리고 이벤트에 몰입하는 경험과 함께 자유로운 참여 선택의 여지를 주는 광장”을 위한 과제를 탐색한다. 특히 ‘군중관리학’에 토대를 둔 정교한 광장 설계와 이벤트 계획의 가능성을 짚는다. 광장을 광장답게 쓰는 방식이 정해져 있다, 정해져 있지 않다는 지점에서 두 필자의 견해가 엇갈린다. 특집에는 남기준 편집장의 ‘‘광장의 재발견’에 단 편집자 주’와 편집부의 조사와 토론을 바탕으로 김정은 편집팀장이 갈무리한 ‘편집부가 추천하는 광장 10선’을 함께 싣는다. ‘광장 10선’은 지난 10년간 『환경과조경』에 실린 광장 프로젝트 전수를 놓고 에디터들이 열띤 토론과 투표를 통해 선정했다. 환경조경대전 출품을 준비하는 독자들에게 광장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실험을 접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이번 특집 ‘광장의 재발견’은 완성본이 아니다. 지금, 여기, 한국 사회와 조경계의 교집합이 있다면 그 중심에 광장이 놓이기에, ‘광장의 재발견’은 현재진행형 프로젝트다. 광장을 다시 생각하며 도시사, 건축사, 조경사의 내로라할 고전들을 계속 뒤적거리지만, 그래도 자꾸 손이 가는 책은 최인훈의 『광장廣場』이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 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누구나 밑줄 그어놓았을 1961년 판본의 서문 한 대목이다. 희망의 새봄을 맞는 『환경과조경』에 몇 가지 뉴스가 있다. 김정은 편집팀장이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먼저 전한다. 논문 주제는 한국 근대 유원지의 공간문화사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정확하게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국내 조경과 건축 전문지 역사상 최초의 박사 기자가 탄생한 셈이다. 하지만 2014년 6월호부터 합류해 서른 세 권의 잡지를 만든 조한결 기자가 대학원 진학을 위해 퇴사한다는 아쉽고 섭섭한 소식도 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조 기자는 『환경과조경』의 지면 혁신을 실천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잡지 곳곳을 업그레이드시킨 유능한 편집자였다. 미술사를 전공할 그의 새로운 항해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편집자가 아닌 필자로 『환경과조경』 지면에 곧 등장하리라 기대한다.
[칼럼] 젖은 광장, 마른광장
지난 해 12월 9일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핑계 삼아 다음날 새벽까지 통음했다. 오후에야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찾아간 미용실. 머리를 다듬던 원장이 말했다. “오늘은 우리 꼬맹이들 데리고 가려고요.” 지난 6주 동안 그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토요일마다 촛불을 들었다. 8시가 넘어서야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서둘러 광장으로 달려가 자정 넘어서까지 거리를 지켰다. “하도 구호를 외쳐서 목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내 직업이 정치 뉴스를 다루는 것임을 알면서도, 원장은 나를 단골로 대한 지난 8년 동안 한 번도 정치 얘기를 건넨 적이 없었다. 그를 보면서, 나는 어떻게 ‘232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숫자가 탄생했는지 알게 되었다. 내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내가 경험했던 광장은 잠깐 타오르다 달콤한 케이크 위로 녹아버리는 막대 촛불 같은 것이었다. 2008년 봄 광화문광장. 그 전해 말 531만의 큰 표 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금세 촛불의 성난 함성에 부닥쳤다. 그러나 거세게 타올랐던 촛불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시작 일인 6월 10일을 기점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청와대 뒷산에 올라 눈물을 흘렸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 이내 잦아들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이 다소 까다로워졌고 ‘한반도 대운하’가 ‘4대강’으로 바뀌었지만, 근본적으론 변한 건 없었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대한 감시·사찰·검거가 이어졌고, 검찰의 가혹한 망신 주기 수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4년 뒤인 2012년엔 이번 겨울 수백만 명을 거리로 내몬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뿐만인가. 2014년의 광장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나.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가슴깊이 아파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왔다 간 광화문광장에선 유가족을 능멸하는 행위가 자행됐다. 단식 농성을 하는 가족들 곁에서 ‘자장면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슬픔과 공감이 있던 자리엔 진영 논리가 횡행했다. 광장에서 튄 분노의 불꽃은 이내 마른 장작처럼 화다닥 탄 뒤 한줌 재로 스러졌다. 마른 광장은 희망을 잠시 조우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 광장은 달랐다. 마음에 차오른 물기. 그건 나만이 느낀 게 아니었을 게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느낀 따뜻함 밑바닥엔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소리친 광장엔 울분과 통한이 서려 있었다. 광장은 축축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던 2014년 당시, 나는 매일 국회로 출근해 하루 종일 정치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취재하는 일을 했다. 흔히들, 갈등은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갈등을 표출하고 사회화 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샤츠 슈나이더)라는 관점이다. 이 경우 정치는 밀실의 개인들을 불러내 자신의 목소리를 분출하도록 하는 광장이다. 그러나 유족들에게 한국의 정치는 광장이 아니었다. 같은 해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주도권을 쥔 여권은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한 ‘지배적 사회 갈등’이었던 세월호 문제의 본질을, 자신들의 존립에 유리한 갈등, 즉 ‘색깔론’으로 대체했다. 야당은 당내 분열과 실력 부족으로 여권의 이런 행태를 제어할 수 없었다. 도무지 좌우를 따질 일이 아닌 사회적 대참사가 정쟁으로 전락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족들은 보상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탐욕스런 집단으로, 좌파와 결합한 불온한 세력으로 몰렸다. 유족들은 밀실에 갇혔다. 지난 해 4·13 총선 때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출마하자 유족들은 도라에몽 인형 탈을 쓰고 선거 운동을 했다. ‘세월호 유족’이 공공연히 나섰다가 표 떨어질 것을 우려했던 까닭이다. 유족들은 ‘투표로 아이들의 미래를 바꿉시다’라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주장을 펼칠 때조차 인형 탈 뒤로 숨어야 했다. 올 겨울 광장. 시민들은 진실의 외침을 다시 응시했다. 밀실에 유폐됐던 진상 규명의 호소를 응원했다. 촛불이 밝혀지기 시작하던 11월 초까지만 해도 광장 한편에서 쭈뼛거렸던 유족들은 날로 탄핵의 열기가 고조되자 전면에 나섰다. 11월 28일엔 노란 종이배 304개를 태운 ‘세월호 고래’ 풍선과 함께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2014년 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며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앞에서 무릎 꿇고 빌기까지 했던 창현이 아빠 이남석 씨는 시위대 맨 앞에 서서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갔던 날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달라’며 1000일 가까이 바쳤던 간절한 기도가 드디어 응답 받았다고 생각했다.” 올 겨울 광장. 수백만 명이 모였는데도 질서와 평화가 유지된 것은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이 쓰는 ‘시민의식의 성숙’이란 ‘중립적’ 표현은 이 광장의 경이로움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인내와 절제, 그 밑에 자리한 것은 304명을 떠나 보낸 우리들의 눈물이었다. 광장은 젖어 있었다. 이유주현은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19년을 살았다. 1997년 「한겨레」 신문에 입사해 문화부, 사회부, 정치부 등을 거쳐 왔다. 한때 조경가를 꿈꾸기도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일과 일 아닌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보려고 하면서도 늘 휘청거리며 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주름이 멋지게 잡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공저로 『소울 플레이스』, 『공원을 읽다』 등이 있다.
[광장의 재발견] 광장의 재발견
지난 2016년 11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는 1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운집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래 최대의 인파, ‘광장의 역사’를 새로 쓴 날로 기억된다. 우리는 광장을 뒤덮은 인파를 보며 주체적 시민의 힘에 압도되기도 하고, 그 축제적 가능성에 전율하기도 한다. 한국의 도시민에게 광장은 익숙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1960년 4.19 혁명을 통해, 그리고 긴 침묵 후 1987년 6월 민주화 시위를 통해 시민이 주체가 된 광장을 발견했다. 그리고 2002년 6월, 월드컵과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는 광장을 매개로 집단적 정치 참여를 축제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폭발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광장이 형성되고 있는 지금의 광화문광장 현상은 광장과 광장 문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논의를 촉발하고 있다. 그러나 광장을 정치적 관점으로만 해석할 경우 광장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용도와 층위를 간과할 우려도 있다. 여러 공공 공간 가운데 광장만큼 일상적 이용과 비일상적 이용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공간이 있을까. 혹은 광장만큼 도시와 장소의 맥락, 정치와 역사적 상징과 관련된 공간이 있을까.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광장이 녹음을 드리운 공원과 유사한 오픈스페이스로 변신하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점차 늘어가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물리적 광장의 기능을 대체할 것인가. 우리는 광장에 관한 다양한 시선을 담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다양한 면면 가운데서 우리 시대 광장의 의미와 쓰임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고라포비아_ 박승진 광화문광장인가, 광화문극장인가?_ 전상인 광장, 군중, 이벤트_ 김세훈 ‘광장의 재발견’에 단 편집자 주_ 남기준 편집부가 추천하는 광장 10선_ 김정은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광장의 재발견] 아고라포비아
1. ‘광장공포증agoraphobia’에 대한 정의는 전문 분야마다 조금씩 상이하다. 심리학에서는 사람들이 붐비는 낯선 공공장소처럼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혼자 놓이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하여, 비이성적인 공포를 느끼는 일종의 공황 장애로 설명하는 반면 건축 분야에서는 광장과 같이 개방되고 넓은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 하는 증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증상을 유발시키는 계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실체적인 공간이 공포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런데 설계자들에게도 일종의 광장공포증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의학적, 심리학적 정의에 속하지 않는, 조금 부연한다면 ‘광장설계공포증’이라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공간을 다루는 조경가 혹은 건축가들에게 간혹 나타나는 불안 증세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설계라는 작업의 끝은 결국 실체적 공간을 구현해 내는 것이다. 도면 위에 그려지는 수많은 선과 기호는 곧바로 물리적 재료로 치환되고 그렇게 공간을 만들어 내거나 점유하게 된다. 공간을 구축하거나 조직하는 행위는 대체로 무엇인가를 더하는 행위인데, 광장은 무엇인가를 담기 위해 비워진 상태를 유지해야(혹은 유지할 수 있어야)하는 공간이므로, 광장을 물리적으로 표현하고 정의하기가 사실 쉽지 않다. 더욱이 설계라는 과정을 통해 ‘광장’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인문적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지점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이 광장설계공포증의 불안 증세는 최고조에 이른다. ...(중략)... 박승진은 아직까지 조경 설계라는 마당을 떠난 적이 없으며, 이 마당에 맞닿아 살고 있는 다양한 이웃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리고 있다. 조경이라는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정교한 작업을 늘 꿈꾸지만 그것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읽고, 쓰고, 가르치며, 배우는 일상에 감사하고 있다. 1965년 서울 생으로, 성균관대학교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조경 디자인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조경설계 서안에서의 설계 실무를 거쳐, 2007년 디자인 스튜디오 loci를 열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광장의 재발견] 광화문광장인가, 광화문극장인가?
최근 우리나라에서 광장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광장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을 뿐 아니라 광장이 뉴스 헤드라인의 진원지가 되는 일도 눈에 띄게 늘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는 2016년 연말을 강타한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비판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관련 촛불시위 탓이다. 건축이나 조경, 도시계획 분야에 종사하는 이른바 전문가들의 영역을 넘어, 광장이 요즘처럼 보통 사람의 의식과 일상에 가까웠던 적이 우리 역사상 또 있었을까? 언제부터 우리 국민이 이처럼 ‘광장형 인간’이 되었을까? 이는 광장이라는 공간이 워낙 한국적 전통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더욱 더 놀라운 일이다. 광장은 서구의 역사적 유산으로서, 그것의 기원은 고대 희랍의 아고라agora와 고대 로마의 포럼forum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경우 아크로폴리스가 신전이나 관청을 거점으로 한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였다면, 아고라는 상품 및 화물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이자 시민들의 사교와 의사소통을 위한 무대였다. 고대 로마의 포럼은 자유인들의 공적 공간으로서, 밀실密室과 대비되었다. 특히 로마 제국은 유럽을 지배하면서 곳곳에 군단 캠프를 설치했는데, 이때 로마로 오가는 길에 교차로를 만들어 포럼을 조성했다. ...(중략)... 전상인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파트에 미치다: 현대 한국의 주거사회학』(2009), 『옥상의 공간사회학』(공저, 2012), 『편의점 사회학』(2014), 『공간으로 세상 읽기: 집·터·길의 인문사회학』(2017) 등이 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광장의 재발견] 광장, 군중, 이벤트
벌써 수년째 교육 현장에서 도시설계와 조경 전공 학생을 가르치고 있지만, 여전히 인접 분야의 생소한 학문을 접하게 되면 곤혹스럽다. 최근 만난 ‘군중관리학crowd management science’이나 ‘이벤트학event studies’도 그랬다. 여기서 생소함은 해당 분야에 대한 무지와 낯섦 때문이지만, 뒤따라오는 곤혹감의 원인은 좀 더 복잡하다. 군중과 공간 속 이벤트의 속성을 이해할 때 좋은 디자인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떠올리며 갖게 되는 교육자로서의 죄책감과 황망함이랄까. 최근 전 세계 도시의 광장에서 군중의 경험과 대규모 이벤트를 관리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우리 가까이에서는 수십만의 집회 참가자가 광화문광장에 주말마다 모이고 있다. “지도부 없는 시민 항쟁”이자 “광화문 세대의 탄생”을 촉발했다고 일컬어지는 이 집회는 광장이라는 도시 공간을 재발견할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대의민주주의와 이미지 정치의 틀 속에 함몰되지 않고, 불합리한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평화로운 저항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시민들이 직접 광화문광장을 선택한 것이다. 수천 개의 단체와 복수의 주최측이 느슨하게 연합하여 이벤트가 일어나므로 아직 효과적인 군중 관리랄 것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파악하기 위해 스마트폰 무선 신호 수집부터 입자물리 소프트웨어를 응용한 촛불 세기 프로그램까지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의 충돌 가능성이나 건강한 시민 의식에 바탕을 둔 도시 축제로의 승화까지 고려한다면, 군중관리학에 기반을 둔 정교한 광장 디자인과 이벤트 계획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중략)... 김세훈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 대학교 GSD에서 도시계획학 석사와 박사 학위(DDes)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이론을 가르치고 스튜디오 수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신흥도시 개발 모델』, 『도시형태변화분석방법론노트』, 『도시와 물길(A City and Its Stream)』 등이 있으며,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도시 연구와 설계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광장의 재발견] ‘광장의 재발견’에 단 편집자 주
이번 특집은 결이 다른 두 가지 섹션으로 구분된다. 특집의 후반부에 수록된 이 글과 ‘편집부가 추천하는 광장 10선’은 광장에 대한 이해를 돕는 참고 문헌과 구체적인 사례에 집중했다. 본지가 공동 주최하는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의 올해 주제가 이번 특집과 이름이 같은 ‘광장의 재발견’임을 염두에 둔 기획이다. 참고 문헌에서 특정 문장을 골라내면서 객관성을 담보하려는 시도는 구태여 하지 않았다. 어차피 광장에 대한 기대와 요구는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대신 최대한 많은 수의 열쇳말을 끄집어내기 위해 책장을 펼치고 또 펼쳤다. 이 글의 뼈대이자 전부인 참고 문헌들은 다음과 같다. 본문에서는 지은이와 글의 제목만을 표기했다. • 김백영, “4·19와 5·16의 공간사회학: 1950~60년대 서울의 도시공간과 광장정치”, 『서강인문논총』 38,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3. • 김백영, “식민권력과 광장 공간”, 『사회와 역사』 제90집, 한국사회사학회, 2011. • 김연금, “광화문광장의 북한산, 도시 풍경 공식의 상수 ‘산’”, 『우연한 풍경은 없다』, 나무도시, 2011. • 김영민, “맥락 무시하기”,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 도서출판 한숲, 2016. • 김영민, “저항하기”, 『스튜디오 201, 다르게 디자인하기』, 도서출판 한숲, 2016. • 김진애, “‘광장’이 된 ‘거리’ - 광화문 네거리와 시청 앞 광장”, 『우리도시 예찬』, 안그라픽스, 2003. • 박명권, “조경 설계를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 『조경관』, 나무도시, 2013. • 배정한, “경관의 재발견”, 『현대 조경설계의 이론과 쟁점』, 도서출판 조경, 2004. • 배정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 건축·도시·조경의 하이브리드”, 『현대 조경설계의 이론과 쟁점』, 도서출판 조경, 2004. • 서현, “도시가 목격한 빨강”, 『빨간 도시 -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효형출판, 2014. • 안명준, “소란한 오해, ‘조경의 시대’ - 광화문광장 아이디어 현상공모 + 설계·시공 일괄입찰”,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 도서출판 조경, 2008. • 안진희·배정한, “광장에 대한 공론의 생성과 공간적 반영 - 여의도공원, 서울광 장, 광화문광장을 대상으로”, 『한국도시설계학회지』 17(6), 2016. • 양상현, “길에서 광장까지, 도시를 걷다”, 『거꾸로 읽는 도시, 뒤집어 보는 건축』, 동녘, 2005. • 이경훈, “광장, 공화를 실현하는 도시의 건축”, 『못된 건축』, 푸른숲, 2014. • 이경훈, “광화문‘광장’은 왜 어색할까?”,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푸른숲, 2011. • 이유주현, “공원과 광장을 둘러싼 공간 정치”, 『공원을 읽다』, 나무도시, 2010. • 이유주현, “녹색 공원은 평등한가”, 『봄, 조경 사회 디자인』, 도서출판 조경, 2006. • 이일훈, “새로운 지형을 꿈꾸는 단서, 그 간절함에 대하여”,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사문난적, 2011. • 이춘석, “EnergyScape: 도시에서 열 받을 일 없기를 바라며”, 『조경관』, 나무도시, 2013. • 임석재, “골목 속 놀이터를 살리자 - 광장”, 『건축, 우리의 자화상』, 인물과사상사, 2005. • 조한, “닫힌 광장에 서서 열린 광장을 꿈꾸다 - 광화문광장”,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돌베개, 2013. • 진양교, “광장과 가로”, 『건축의 바깥 - 조경이 만드는 외부공간 이야기』, 도서출판 조경, 2013. • 홍형순, “모든 길은 광장으로 통한다”,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도서출판 조경, 2007. • 황두진, “2002년 6월, 그리고 다시 읽는 최인훈의 ‘광장’”, 『건축』 46(12), 대한건축 학회, 2002....(중략)...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광장의 재발견] 편집부가 추천하는 광장 10선
편집부는 ‘광장의 재발견’을 고민하는 독자들을 위해 열 개의 광장을 소개한다. 선정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편집실의 광장과 다름없는 긴 회의 테이블 위에 지난 10년간, 즉 2007년부터 2016년까지 『환경과조경』에 수록된 완공된 광장 작품의 소개 지면을 늘어놓고, 편집장부터 인턴 기자까지 모두 모여 모두들 열 개의 광장을 뽑아보았다. 각자의 후보 추천 이유를 발표하며 열띤 토론을 벌이길 몇 차례, 그리고 투표와 재투표, 패자부활전을 거쳐 최종적으로 열 개의 광장을 선정했다. 광장의 선택 이유는 디자인이 아름다워서이기도 했고,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느낄 수 없었지만 직접 방문해 보니 잘 사용되고 있더라도 있었으며, 가보진 못했지만 SNS를 통해 이용자의 반응을 확인해보니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며 주민들의 일상에 녹아 있더라 등 다양했다. 세계의 광장은 영어의 플라자plaza를 비롯해 영국의 스퀘어square, 프랑스의 플라스place, 네덜란드의 플레인plein, 이탈리아의 피아차piazza, 독일의 플라츠platz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각기 불리는 이름은 달라도 우리에게 ‘광장廣場’으로 번역되는 이 공공 공간은 공통된 경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잡지에 수록된’이란 제한된 조건 안에서 살펴 본 광장들이지만, 최근 리노베이션 된 광장들은 대체로 보행광장으로 변모하고 있어 자동차의 흐름보다는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의 흐름을 중시하는 도시계획과 설계의 추세를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광장이 기본적으로 기후 조절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심에 남은 오픈스페이스가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물리적 기반 시설로서 광장의 역할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어떤 광장은 공원을 포함하기도 하고, 공원 속에 광장이 존재하기도 하면서 광장과 공원, 혹은 정원의 경계를 넘나든다. 광장을 둘러싼 도시와 건축의 역사, 원형적 지형을 재해석한 여러 사례는 다채로운 광장 디자인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추천작 가운데는, 광장의 디자인을 두고 시민과 전문가 사이의 논란이 사회 문제화 되어 수차례 디자인이 변경된 사례도 있다. 이러한 소위 문제적 광장들은 사회적 공간으로서 광장 디자인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을 던져주기도 한다. 여기서 소개하는 광장의 특징을 하나로 특정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하나의 광장이 가진 면모와 기능이 다양하다. 선정 이유는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이 역시 도시와 역사의 맥락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담을 수 있는 광장에 대한 여러 시선이 존재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광장의 수록 순서는 공평하게 가나다순이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광장의 재발견] SNS 속 광장
디자이너의 설계 전략은 여전히 유효할까?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디자인을 통해 광장이 일상과 비일상을 아우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아내는 ‘지역의 활력소’로 거듭날 것이라 자신한다. 『환경과조경』이 소개한 세계 곳곳의 광장은 디자이너의 야심대로 시민들에게 이용되고 있을까? 인스타그램Instagram과 트위터Twitter 등 SNS와 구글Google을 통해 이용자 반응을 살폈다. 라드하위스플레인 동물원, 극장 등 매력적인 건물에 둘러싸여 있어 어쩌면 건물의 진입부 정도로 쓰이지 않을까 의심도 했지만 시민들은 이 광장에서 꽤나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수공간에서 발을 적시는 사진이 많다. 스케이트 파크에서의 역동적인 장면이나 독특한 조명이 도드라지는 밤 풍경도 많다. 가끔 개최되는 페스티벌, 퍼블릭마켓의 현장감이 생생히 느껴지는 사진에서는 광장이 사회적 기능 또한 톡톡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시의 여가 생활에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광장. 오죽하면 구글 트렌드 라드하위스플레인 관련 검색어에 ‘일요일’이 있을까. ...(중략)...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클리블랜드 광장
대상지는 클리블랜드Cleveland 시의 유서 깊은 중심지에 위치한 오픈스페이스다. 광장은 역사적 건축물인 올드 스톤 교회Old Stone Church, 저축 조합 협회Association Society for Savings building와 높이가 235m에 달하는 터미널 타워Terminal Tower를 비롯해 일련의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또한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을 기리는 기념탑과 부차적인 기념물, 동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탁월한 입지의 대규모 오픈스페이스인 만큼 광장은 오하이오의 주요한 시민 공간이 되어야 했다. 클리블랜드 광장의 최우선 과제는 활용성과 사회성을 향상시켜 광장을 클리블랜드 시의 다운타운, 이스트사이드, 웨스트사이드 등과 연결하는 것이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Project Lead, Landscape Architecture, Urban Design, Master Planning JCFO(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Civil, Structural, MEP Engineering OSBORN engineering Architecture nArchitects Water Feature Consultant Fluidity Design Consultants Irrigation Consultants FRS Design Group Soil Consultant Sustainable Environmental Consultants Traffic Engineering Nelson / Nygaard General Contractor Donley's Construction Client Group Plan Commission and LANDStudio Location Cleveland, Ohio, USA Size 6ac Year 2009 ~ 2016 Completion 2016. 5. Photographs Bob Perkoski, James Corner Field Operations, Multivista for Donley's Construction, Roger Mastroianni, Sahar Coston Hardy JCFO(James Corner Field Operations)는 뉴욕에 기반을 둔 도시설계와 조경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오피스다. 대규모 도시설계 프로젝트나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사이트부터 작지만 섬세한 디테일을 요구하는 디자인까지 다양한 규모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 뉴욕 시의 하이라인과 프레시 킬스, 라스베이거스의 시티 센터, 중국 칭하이 지역의 도시설계 마스터플랜, 시애틀 워터프런트의 마스터플랜, 필라델피아의 레이스 스트리트 피어, 산타 모니카의 통바 파크, 런던의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홍콩의 침사추이 워터프런트 등이 있다. 모든 설계 실천에 있어서 사람과 자연의 생태를 연구하고,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공공 영역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슈체친 국립박물관 다이얼로그 센터 프셰로미
슈체친Szczecin시는 폴란드에서 자행된 역사적 폭력의 희생양 중 하나다. 이 도시는 1945년까지 독일에 속해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폴란드에 편입됐다. 급작스러운 인구 이동이 일어나며 사회 구조가 파괴됐고 도시 정체성도 타격을 받았다. 전쟁 이전 솔리다르노시치Solidarności광장은 공 동 주택지에 위치한 슈체친의 자유 발언대였으며, 광장 북쪽은 콘제르트하우스Konzerthaus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연합군의 폭격으로 광장과 인근 지역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 위를 횡단하는 차로가 생기며 도시에서 완전히 잘려나가게 되었다. 이후 이곳은 1970년대 노동자 시위의 무대가 되었다. 시위는 무자비하게 진압되었으며, 16명의 시위자가 사살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광장은 자유를 향한 투쟁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중략)...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Design KWK Promes Collaboration Aleksandra Stolecka, Piotr Tokarski, Adam Radzimski, Joanna Biedna, Magdalena Adamczak General Contractor Skanska Investor National Museum in Szczecin Location Szczecin, Poland Size Site: 9,577m2 Gross Covered Area: 1,628m2 Usable Floor Area: 2,117m2 Exhibition Surface: 960m2 Volume: 15,845m3 Competition 2009 Project 2010 ~ 2011 Construction 2012. 1. ~ 2016. 2. Photographs Aneta Pop³awska-Suoe, Daniel ródlewski, Jakub Certowicz, Jaroslaw Syrek, Juliusz Sokolowski, KWK Promes, Magdalena Kotelon, Piotr Rakowski KWK 프로메스(KWK Promes)는 1999년 로베르트 코니에치니(Robert Konieczny)가 설립한 건축설계사무소다. 아트리얼 하우스, 코모다 하우스, 브로큰 하우스, 세이프 하우스, 히든 하우스 등 코니에치니의 작품은 미스 반 데어 로에 재단에서 선정하는 유럽 건축상에 열 번이나 후보로 오른 바 있다. 그중 아트리얼 하우스는 2006년 월드 아키텍처 뉴스(World Architecture News)가 조직한 공모전에서 베스트 주택 프로젝트 부문의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7년 KWK 프로메스는 『월페이퍼(Wallpaper)』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설계사무소 101곳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으며, 2008년에는 시카고의 뮤지엄 건축 국제 심사위원단이 아트리얼 하우스와 히든 하우스를 세계 베스트 주택으로 지정했다. 이외에도 대표작으로, 오토 패밀리 하우스, 카토비체의 리빙가든 하우스, 코니에치니의 방주 등이 있다.
[이미지 스케이프] 계절은 반복된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면 새해의 시작이 언제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1월 1일은 당연히 새해 첫날이고, 음력 설날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한 해에 시작이 두 번이라 새해 결심하기 더 좋다는 분들도 있더군요. 작심삼일이 한참 지난 뒤에 음력설이 돌아오니까 뭐 그리 틀린 말도 아닙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3월이 또 다른 시작입니다. 겨울방학 동안 한참 못 보던 학생들이 새 학년을 맞아 학교로 돌아옵니다. 게다가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신입생들을 보면 또 다른 의미에서, 어쩌면 선생 입장에서는 더 절실하게 새해의 시작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행정적으로도 3월부터 새로운 ‘학년도’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3월이 학교에서는 새해의 시작입니다. 계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봄의 출발이라 할 3월이 진정한 새해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왜 하필 봄이 아니라 한창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새해가 시작된다고 정했을까. 자연스럽게 모든 생명이 싹트기 시작하는 봄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계절을 이야기할 때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말하기 훨씬 편할 텐데. 첫눈도 마찬가지인데, 1월 1일에 눈이 온다고 첫눈이라고 하진 않잖아요.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또 있었던 모양입니다. 춘분을 새해의 기점으로 삼는 문화권도 있었다고 하니까요. 한 겨울에 시작하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을 기준으로 했을 것 같습니다. 낮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가 양력 12월 22일 근처니까 그때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그래도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삼은 게 천문학적으로 딱 맞는 것도 아닙니다. 열흘쯤 차이가 있으니까요. 세상에는 별 이유 없이 정해진 원칙이 꽤 많으니 이 정도로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중략)... 주신하는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토문엔지니어링 건축사사무소, 가원조경기술사사무소, 도시건축 소도 등에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의 실무를 담당한 바 있으며, 신구대학 환경조경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원예생명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조경 계획 및 경관 계획 분야에 학문적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그들이 설계하는 법] 도주
도주의 출발점으로 한 잔의 커피를 지목한 것은 안데스 산맥의 아라비카종 커피나무Coffea Arabica 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가 자유로를 달린다. 커피에서 무오년戊午年 동짓날 마셨던 사약死藥 냄새가 날 때면 일을 멈춰야 한다. 임계점에 다다른 일상의 압력이 만들어낸 무중력의 기억 저편에서 더께 두꺼운 편린을 붙잡고 호명되지 않은 들풀 지천의 벌판을 헤적이는 것 외에 다른 방편은 없다. 1990년 1월 1일자 「한겨레」 신문 21면에 새해 특집으로 초록색 바탕에 ‘비무장지대를 녹색평화마당으로’라는 흰색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복학하고 대학 사학년에 올라가던 겨울, 신문을 보면서 이걸로 졸업 설계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대상지로 발표했을 때 담당 교수님은 무척 난감해 하시며 다시 잡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랬다. 천지 분간을 못하던 시절이었다. 2000년 ‘조경공방나무’ 누리집을 만들고 작업했던 ‘열린 프로젝트(www.ateliernamoo.xyz/openprojects/intro.htm)’에서 난지도와 함께 비무장지대를 하겠다고 호언했지만 난지도만 팔 개월 정도 진행하고 끝을 냈었다. 2002년에서 2003년 사이 청계천을 두고 열린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마무리에 대한 결론도 없이 잘려 나간 고가처럼 예리한 단면을 드러내며 멈췄다. 한계에 대한 인식과 결말조차 열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특별한 아쉬움은 없지만, 그렇게 마음의 심연으로 가라앉은 설계 기제機制는 푸른곰팡이가 피어 의식 속에서 멀어져 갔고 일상에 묻혀버렸다. 그 사이에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이 도륙屠戮되는 것을 목도해야 했고, 2011년 그 몹쓸 정권이 ‘비무장지대 개발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는 풍문이 역병처럼 돌았다. 덜덜거리는 자동차에 시동을 거니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에서 라디오머리 톰이 물었다. ‘당신, 유령 말을 탄 채, 누구의 군대인가?’ 이수학은 2003년부터 아뜰리에나무를 꾸리고 있다. www.ateliernamoo.xyz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가까이 보기, 다시 읽기] 까다로운 부지와 조금 '다른' 재료
멋들어진 고가 철교 아래로 녹음이 우거진 수변 목재 데크 산책로boardwalk가 보인다. 지난 호에 소개한 피어 C 파크Pier C Park의 사례에서도 등장했던 수변 목재 데크 산책로는 수변 공원에서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바닥면은 목재 데크로 마감했고, 단정한 수형의 교목이 드리우는 그늘 아래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나무 벤치가 더해져 물과 나무와 녹음이 어우러진 친근한 공간을 마련했다. 사진으로 읽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목재 데크 산책로는 약간의 경사로 오르막을 형성하는 한편, 멀어질수록 그 폭이 좁아져 원근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짐작하건데 오르막의 끝에는 활짝 열린 강 건너의 조망이 펼쳐지리라. 목재 데크의 패턴은 소실점을 따라 종방향 또는 횡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고 비스듬한 사선으로 처리되어 산책로의 방향성에 색다른 결을 더하고 있다. 사실 앞의 사진에서 보이는 목재 데크는 천연 재료가 아니다. 인공적으로 실제 목재와 흡사하게 만든 제품이다. 이는 재생 목재의 분말과 재생 플라스틱을 혼합해 만든 인공 목재 데크로 별도의 벌목을 하지 않고 재생 재료만으로 만들어진 환경 친화적인 재료다. 잘 만들어진 인공 목재의 경우, 그 색상과 무늬가 천연 목재의 널과 간단히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유사하고, 천연 목재와 같이 널마다 미묘하고 자연스러운 색상의 차이가 있다. 인공 목재 데크는 천연 목재보다 강도가 강해 쉽게 파손되거나 휘어지지 않고, 때가 타거나 벌레 먹지 않아 유지 관리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천연 목재와 마찬가지로 외부 온도에 따른 재료의 온도 변화가 크지 않아, 덥거나 추운 환경에서도 재료가 인체에 닿았을 때 친밀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연 목재가 주는 특유의 촉감과 질감을 인공물로 100% 재현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사례의 장소에서도 안전 난간의 손잡이와 벤치의 상판과 같이 인체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부위의 재료는 천연 목재를 사용했다. 바닥면의 인공 목재 데크는 이들 천연 목재의 색상과 근사한 제품을 선택하여 시각적으로 공간의 통일성을 추구한 것이다. ...(중략)... 안동혁은 뉴욕에 위치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스(James Corner Field Operations)에서 활동하고 있는 펜실베이니아 주 등록 미국 공인 조경가(RLA)다. 서울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현재 회사에 8년째 근무하면서 Philadelphia Race Street Pier, 부산시민공원, London Queen Elizabeth Olympic Park, Hong Kong Tsim Sha Tsui Waterfront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다른 생각, 새로운 공간] 전유성 코미디시장 CEO
잠깐 개인적인 회상을 언급하자면, 캐나다 유학 초기에 그곳 친구들로부터 흔히 들었던 말이 “너 너무 진지해 보여!You look so serious. Relax!”였다. 물론 사람에 따라 편차가 크겠지만, 돌이켜보면 비단 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한국 유학생이나 교민들의 인상은 유럽이나 남미 출신들에 비해 대체로 긴장돼 있었다. 나는 그런 인상이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전쟁의 여운이 남긴 오랜 대결 구도 속에서 우리 편이 아니면 적으로 몰아붙이는 상황, 0.1점 차로 갈리는 승자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분위기에서 눈치 보며 살다보니 상대적으로 우리 얼굴에는 여유의 자연스런 주름이 새겨질 틈이 없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다. ‘전투적’이라는 말이 칭송받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피부도 보톡스 해서 전투적으로 빵빵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도시와 공간에 대한 계획도 어딘지 모르게 아래아 한글로 작성된 공문서의 표 마냥 줄과 열을 맞춰 착착 번호 매겨진 어색한 느낌이다.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럽고 이식된 듯한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청도에서 전유성이 해오고 있는 활동은 도시재생, 농촌 재생의 희한한 대안적 옆길 같은 깨달음을 주었다. 지금 30~40대는 예전 인사동의 명물 찻집 겸 주점, ‘학교종이 땡땡땡(이하 학교종)’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시절 교실을 옮겨 놓은 듯한 특이한 공간. 거리를 걷는 여느 연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전유성은 그저 코미디만 하는 코미디언이 아니라는 인상을 깊이 심어주었다. 짝궁과 금 그어놓고 함께 쓰던 진초록의 2인용 책상과 삐걱거리는 코딱지만 한 나무 걸상에 앉아 추억과 차를 곁들이는 곳, 당시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할 데이트 코스였다. 떠드는 사람이 적혀 있는 칠판 위에 걸린 교훈은 ‘공부해서 남 주자’였고, 급훈은 ‘음주운전하면 진짜 학교 간다’였다. 개그맨 지망생들의 공연도 있었고 전유성이 직접 마술쇼를 보이기도 했다. ...(중략)... 최이규는 1976년 부산 생으로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저서 『시티오브뉴욕』을 펴냈고, 북미와 유럽의 공모전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UNKNP.com의 공동 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 파크, 소호 및 대구,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 전시를 가졌다. 현재 계명대학교 도시학부에 생태조경학전공 교수로 재직하며 울산 원도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정원 탐독] 노자와 플라톤으로 읽는 정원
요즘 우리는 ‘인문(학)’과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듣는다. 특정 단어를 많이 쓴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화제라는 뜻이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만큼 결핍됐다는 의미기도 하다. 어느 철학자는 “인문이란 인간이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풀어나간 무늬”라고 했고, 또 다른 철학자는 21세기가 왜 간절히 노자를 읽게 하는지 역설하기도 했다. 왜 지금 우리는 다시 인문학을 외치고 있을까. 그 답을 찾다 보면 만나게 되는 단어가 바로 힐링이나 치유다. 우리가 보낸 20세기는 지난 수천 년의 인류 문명 역사를 다 합친 것보다도 더 급격한 삶의 변화를 만들어낸 시기였다. 그 변화의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과학과 기술의 힘이었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꿈꿔보지 못한 편리하게 향상된 물질적 삶을 얻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정신의 결핍으로 인류 자체가 가야 할 방향성을 잃고 아픈 상황이기도 하다. 노자의 도덕경과 정원 기원전 8세기에서 3세기에 이르는 시기를 중국 역사에서는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른다. 봉건제의 틀을 갖췄던 주周나라가 멸망하자 충성을 맹세했던 지역의 수많은 가신들은 세력을 모아 나라를 세웠고, 이 틈에 하루에 한 번씩 새로운 나라가 나타나고 무너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적 대혼란의 시기가 찾아온다. 그러나 달리 보면 이 시기는 가신마다 뛰어난 인재를 필요로 한 덕에 그야말로 문화, 인문, 철학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이때를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시대라고도 한다. 제자란 학자를 말하고 백가란 백 개의 가문을 이뤘다는 뜻인데, 그중에 노자와 공자도 있다. 생과 사의 흔적이 뚜렷한 공자에 비해 노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게다가 노자의 말씀을 담았다는 도경과 덕경을 합친 ‘도덕경道德經’ 역시도 발굴된 자료에 따라 첨삭이 지속적으로 일어난 흔적이 있어 한 사람의 작업이기보다는 인쇄가 없던 시절, 비단과 대나무에 글을 베껴 쓰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은 혹은 어떤 집단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도 본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서든 이 도덕경이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일본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문화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철학이 된 게 분명하다. ...(중략)... 오경아는 방송 작가 출신으로 현재는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영국 에식스 대학교(The University of Essex)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시골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외 다수의 저서가 있고, 현재 신문, 잡지 등의 매체에 정원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보는 칼럼을 집필 중이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시네마 스케이프] 너의 이름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도시의 풍경을 사람들이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영화의 후반부,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타키가 입사 면접 때 두서없이 더듬거리던 내용을 정리하면 아마 이런 내용일 게다. ‘사라지다’, ‘풍경’, ‘기억’, 영화의 주제를 요약하는 대사다.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였다. 자습 시간에 국어 선생님이 칠판에 크게 ‘조경’이라는 한자를 쓰셨다. 만들 조造, 경치 경景, 유망한 분야라고 소개한 이 두 글자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될지 그 분은 몰랐겠지. 그 순간, 수학과 미술을 좋아하던 한 여학생은 주저 없이 ‘풍경 만드는 일’을 평생 하리라 마음먹었다. 풍경을 만드는 근사한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손으로 그리던 일을 기계가 대신 해주게 되었지만 시간은 늘 부족하다. 얼버무리듯 하나씩 마무리해 갈 뿐이다. 다음엔 잘해야지 다짐하지만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풍경을 만드는 일 따윈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매번 다른 사람과 만나고, 다른 조건으로 새로 시작해야 한다. 매일 공부해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따뜻한 풍경은 대체 언제 만들 수 있을까. 영화 ‘너의 이름은’은 근사한 풍경이 이미 우리 일상에 있다고 말해주는 영화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길 건너 가로등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쯤 자세히 보라고 말해주는 영화다. ...(중략)... 서영애는 조경을 전공했고, 일하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 본 두 한국 영화, ‘죽여주는 여자’와 ‘미씽:사라진 여자’는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노인 빈곤, 소외 계층, 이주 여성 인권, 모성애와 워킹맘 등 쉽지 않은현실의 민낯을 대하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영화는 때론 판타지로, 때론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통해, 서로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깨어있도록 만든다.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예술이 도시와 관계하는 열한 가지 방식] 도시와 이주 ― 믹스라이스
동료 작가들과 회의를 마치고 차 한 잔을 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크고 단호하게 변하던 그 목소리는 알고 보니 조금 전까지 우리와 함께 이야기 나누다 전화를 받으러 나간 어느 작가의 목소리였다. 좀처럼 격앙된 모습을 보인 적 없던 분이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고, 걱정되는 마음에 조심스레 무슨 일인지 묻자 그는 프로젝트 과정 중에 알게 된 어느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수단에서 온 지인이 최근 불법 체류 문제로 한국에서 강제 추방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내전이 진행 중인 수단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보석을 위해서는 2천만 원이 필요하고, 난민 신청을 하기도 어렵다는 내용의 통화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일은 몇 해가 지나도 결과를 알 수 없는 길고 지난한 과정으로 익히 알고 있는 바. 하지만 2천만원쯤이야 호기롭게 내어놓을 수 있는 여유, 아니 그 2천만 원 자체도 없는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주민을 위한 봉사 활동도 다니는 그는 답답함 한편에 냉정하게 말해야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건축이나 도시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듯, 오스만 남작이 방사형으로 계획한 파리는 구역마다 뚜렷한 성격을 갖는 동시에 중심부와 외곽 지역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계층화되어 있다. 방리외banlieue, 즉 외곽 지역에는 주로 이민자인 빈민층이 살고 있다. 과거 노동자를 위해 지어진 획일적인 공영 주택이 이민자들의 터가 된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방리외에도 부촌이 있다. 도식적으로 생각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지만 도시 공간의 사회적 계층화를 짚을 때 종종 언급되고는 하는 것이 프랑스어로 교외suburb를 뜻하는 이 방리외다. 도시 공간이 형성되는 방식은 각 도시, 공간마다 고유한 특수성을 갖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 되었든 이처럼 도시 공간은 각 지역, 공간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는 신scene을 가지며 많은 경우 사회적으로 계층화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주체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형성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도시계획이 이를 조장하고 주변화된 이들을 더욱 주변화하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중략).... 진나래는 미술과 사회학의 겉을 핥으며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게으르게 활동하고 있다. 진실과 허구, 기억과 상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흐리고 편집과 쓰기를 통해 실재와 허상 사이 ‘이야기-네트워크-존재’를 형성하는 일을 하고자 하며, 사회와 예술, 도시와 판타지 등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는 기술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지점에 매료되어 엿보기를 하고 있다. 2012년 ‘일시 합의 기업 ETC(Enterprise of Temporary Consensus)’를 공동 설립해 활동했으며, 2015년 ‘잠복자들’로 인천 동구의 공폐가 밀집 지역을 조사한 바 있다. www.jinnarae.com * 환경과조경 347호(2017년 3월호) 수록본 일부
그라피티, 도시의 문제아에서 현대 미술의 루키로
예술의전당 ‘르 코르뷔지에’ 전을 보고 나서는 길, 황당한 그림과 마주쳤다. 우아한 모나리자 위에 그려진 우스꽝스러운 파란색 올림머리와 우악스러운 빨간 진주 목걸이. 얼굴빛도 노리끼리한 것이 분명 심슨 가족의 마지다. 만화적인 두꺼운 윤곽선과 단색 평면은, 3차원의 환영을 창조해내는 거장의 위대함을 무색하게 만든다. 다빈치 특유의 연기처럼 아득한 풍경은 엉뚱한 분홍색으로 빈틈없이 메워지고, 그 위로 ‘위대한 낙서The Great Graffiti’라고 적힌다. 지난 2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은 파격적이게도 낙서를 전시했다. 나를 전시로 이끈 마지 심슨의 행색을 한 모나리자뿐 아니라, 백설공주의 독사과같이 흘러내리는 애플 사의 로고, 빨간 스프레이로 낙서하는 잿빛 신사, 화면에 바싹 붙어 관객을 노려보는 스파이더맨 등, 독보적인 색깔로 거리를 누비다 이젠 미술관과 갤러리로 반경을 넓힌 일곱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낙서, 미술관으로 들어오다 일곱 명의 작가, 일곱 개의 섹션. 티 없이 말끔한 미술관 벽에 네모난 캔버스들이 나란히 걸리고, 이들을 충실히 따라가면 전시는 끝을 맺는다. 새로울 것도, 군더더기도 없는 전시 방식이지만, 이로 인해 관객은 작품을 치기 어린 낙서가 아닌 현대 미술로 마주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47호(2017년 3월호)수록본 일부
화성에서 온 메시지
끊임없이 마을을 덮치는 모래바람과 유일한 식량 자원인 옥수수 밭. 2014년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가 그리는 사막화로 인해 식량 위기가 찾아온 미래 지구의 모습이다. 멸망을 앞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은 결국 우주로 나선다. 제2의 지구가 되어줄 행성을 찾아서. 그 다음해 개봉한 ‘마션’은 좀 더 적극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처한다. 지구와 가장 유사한 행성인 화성을 탐사하고 화성에서 감자를 재배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과연 이는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일까? 2015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5차 보고서에 따르면 2100년 지구의 평균 기온이 최고 4.8℃ 오르게 된다. 빙하기부터 5만여 년 동안의 온도 변화에 버금가는 수치로, 이는 기후 변화에 따른 지구 종말이 영화적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몇십 년 후, 우리는 제2의 지구를 찾으러 떠나는 우주선에 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1월 23일부터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연)은 기후 변화 화학 예술 특별전 ‘화성에서 온 메시지’를 개최했다. 화학연 디딤돌플라자 1층 스페이스 씨샵Space C#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심각한 기후 변화로 예술가들이 화성으로 이주한 상황을 가정한 독특한 방식의 전시다. 박영준, 안가영, 김지수, 길현, 셔일 사프렌Cheryl Safren, 아비바 라마니Aviva Rahmani, 마르쿠츠 베른리Markuz Wernli & 사라 다허Sarah Daher 등 국내외 7명의 작가뿐만 아니라 탄소를 활용한 첨단 화학 기술로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화학연 연구팀도 전시에 참여해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중략)... *환경과조경347호(2017년 3월호)수록본 일부
광화문포럼, 광장의 미래를 고민하다
최근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관심이 뜨겁다. 관심의 열기만큼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광화문광장의 미래를 고민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서울시다. 최근 광화문포럼이라는 커다란 논의의 장을 펼치고 다양한 의견을 끌어내 수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역사도심재생과의 양병현 과장을 만났다.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토요일 광화문광장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면서 광화문광장을 운영하고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의 역사도심재생과 직원들은 바빠졌다.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원도 늘었고, 집회 허가 과정에서 법적인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도 많아졌다. 집회 후 광장 바닥에 위험하게 떨어진 촛농을 제거하는 일까지. “실무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지만, 선배님들이 광화문광장을 만들어 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성 당시에는 거대한 중앙 분리대라는 비난도 있었고 한동안 국가 행사 중심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역할을 찾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올해 1월 25일 서울시는 광화문포럼을 통해 광화문광장의 미래를 새로 그리겠다는 계획을 밝혀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미 지난해 9월부터 도시계획, 역사, 건축ㆍ조경, 교통, 시민 소통 등 7개 분야 전문가 49인과 100명의 시민위원으로 구성된 광화문포럼을 가동 중이며, 7월까지 마스터플랜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포럼이라는 형식을 취하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광화문광장에 대한 생각은 시민부터 전문가 내에서도 분야에 따라, 또 사람마다 다릅니다. 광장을 조성한 지 7년 밖에 안 되었으니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장 더 넓히거나 한쪽으로 붙여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동상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논란이 워낙 많기 때문에 대규모 토론을 통해 최대한 많은 의견을 끌어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중략)... *환경과조경347호(2017년 3월호)수록본 일부
환경과조경 통신원, 소통의 창구가 되다
매년 2월 중순이 되면, 환경과조경 공식 메일함에 새로운 폴더가 생긴다. ‘통신원 ◯◯기 모집.’ 매년 새롭게 선발되는 환경과조경 통신원의 지원 서류가 쌓이는 곳이다. 올해에는 ◯◯에 숫자 33이 채워졌고,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포부를 담은 지원서가 속속 도착하는 중이다. 그리고 지난 일 년 동안 각 대학과 지역의 조경 관련 정보를 발 빠르게 취재해온 32기 통신원은 어느덧 활동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무엇에 이끌려 통신원에 지원하게 됐고, 또 어떤 활동을 펼쳐왔을까? 전국기장으로서 32기 통신원을 이끌어온 설윤환 단국대학교 통신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매서운 고용 한파가 계속되는 중, 대학교 졸업반의 화두 중 하나는 역시 취업이다. 2016년 대학교 4학년이 된 설윤환 통신원에게도 취업은 피해갈 수 없는 숙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된 준비를 시작하기도 전에 멈춰 서야 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던 것이다. 게다가 조경 분야에 설계, 시공 외에 어떤 진로가 있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막막함에 서성이던 중 같은 학교에서 환경과조경 통신원으로 활동하던 동기의 기사를 접했다. 교내 행사를 다룬 기사에 흥미를 느낀 그는 바로 동기를 찾아가 통신원 활동에 관해 물었고, 환경과조경 통신원 지원서를 작성했다. 다양한 활동에 관심도 있었고, 1985년부터 운영되어 980명이 거쳐간 통신원 활동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적성에 대한 고민도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조금 더 책임감 있는 자세로 활동하고 싶어 통신원 기장에도 지원하게 됐다. “대학교에서 배우는 조경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국 36개의 조경학과 친구들과 만나 부족한 부분을 간접적으로나마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경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 선배님을 만나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설레었습니다.”...(중략)... *환경과조경347호(2017년 3월호)수록본 일부
[편집자의 서재] 고래
21세기 대한민국과 ‘샤머니즘’. 가장 신선(?)하고도 정곡을 찌르는 조합이 탄생했다. ‘샤머니즘’은 NPR미국공영방송,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을 비롯한 외신들이 최근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보도하며 사용한 표현이다. IT 대국, 정보화 강국임을 자랑하던 대한민국의 민낯이 전근대적 신화로 점철되어 있음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내막이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와중에도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는 1970년대를 상징하는 신화적 아이콘에 대한 맹신이 점점 더 공고해지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코미디인가 비극인가. 국문과 학부생 시절, 학생들 사이에서 ‘기호학 천재’로 불리며 존경과 선망을 한 몸에 받는 교수님의 ‘신화론’ 수업에 겁 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상대평가의 제물로 희생된 쓰라린 경험이 있다. 교수님은 학생 쪽을 전혀 바라보지 않고 먼 곳을 응시하며 수업하시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것은 아마 학생들의 백지처럼 순진무구하고 해맑은 눈빛을 견디기 어려우셨기 때문이었으리라. 교수님은 문학의 내러티브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예술, 경제의 모든 현상을 기호와 신화로 설명하시곤 했다. 사회 전반을 꿰뚫는 그 방대하고 복잡한 이론을 헤매다 보면 로고스가 뮈토스가 되고 뮈토스가 로고스가 되다가 정말로 꿈의 신화 세계로 빠져들기 일쑤였다. 그것은 오후 2시 강의의 법칙이었다. 그렇게 비몽사몽 신화 세계를 헤매는 와중에도 하나 기억에 남는 강의의 메시지는 ‘신화는 영원한 신화로 머물러 있기보다는 끊임없이 그 신화성을 드러내는 탈신화의 과정에서 포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은 당신의 저서, 『탈신화 시대의 신화들』의 서문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신화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판단되는 순간, 그것은 숨겨진 신화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 신화를 드러내는 방법이 치밀하게, 전략적으로, 그러면서도 우리의 열린 관점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면,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도 보다 깊고 정교해질 것이다. 적어도 신화에 관한 한 그래야 할 당위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사는 이 시대에는.” 신화를 해체하는 탈신화의 과정을 통해 신화의 숨겨진 의미가 새롭게 발견된다는 강의의 핵심 메시지는 당시 내게 불교의 선문답처럼 느껴졌다. 천명관의 소설 『고래』를 만나기 전까지는. 천명관의 소설은 엔간해서는 도서관 서가에 얌전히 꽂혀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온라인 예약 대기자 명단이 줄을 이어 있어서 도서관 대출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에게 반납이 되자마자 따로 챙겨 놓아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인기 도서의 법칙이었다. 책 값을 아껴 커피 값으로 쓰곤 했던 이 철없던 대학생은 할 수 없이 큰 맘 먹고 제 돈을 주고 서점에서 책을 샀다. 그렇게 ‘인생 소설’을 만나고 나서야 단돈 9,800원을 아끼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이 소설은 소설가 임철우의 표현대로 정말 “특별하다”. 혹자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이나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등에서 보이는 라틴 문학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그의 소설에서 엿보인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오히려 판소리나 구비문학의 신화적 상상력을 현대 소설의 작법으로 구현한 듯하다. 아주 오래된, 언젠가 한 번은 들었던 것 같은 옛이야기를 풀어내는가 하면, 사진과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해 문학적 실험을 시도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처럼 한 페이지에 단 두세 문장만 할애하기도 하고 그림을 삽입하기도 하는 등 때로는 전위적이기도 하다. 처음 책 뒤표지에 크게 적힌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에 빚진 게 없는 작가다!”라는 소설가 은희경의 심사평을 보고 다소 호들갑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래』는 ‘노파-금복-춘희’로 이어지는 여성 3대(정확히는 노파와 금복은 가족 관계가 아니지만)의 장대한 이야기다. 소설은 신화와 구비전승, 무협지, 드라마, 포르노, 농담 등의 무수한 클리셰를 반복, 변주, 패러디, 오마주하며 ‘탈신화-신화’의 과정을 오간다. 그의 소설에서 아기장수 우투리를 연상케 하는 남성 캐릭터 ‘걱정’은 한순간에 육중한 바보가 되고, 느와르 영화 속 갱단 두목처럼 카리스마 있게 그려지던 ‘칼자국’은 마지막 말도 제대로 끝맺지 못한 채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다. 자신이 가진 여성적 매력을 어필하며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게 된 여장부 ‘금복’은 성공 가도의 정점에서 남성으로 성이 변하며 몰락의 길을 걷는다. 동화처럼 순진무구한 자신만의 세계에 있던 ‘춘희’는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고어 영화처럼 끔찍한 상황에 내던져지기도 한다. 무수한 신화적 이야기들이 소설이라는 ‘멜팅 포트melting pot’에 용해되어 만들어내는 미묘한 틈새에서 독자들은 기존의 신화가 해체되고 새로운 신화가 형성되며 쌓여가는 거대한 바벨탑을 본다. 신의 진노로 언어가 흩어지고 몰락한 바벨탑처럼 소설 속 다양한 등장인물이 만들어내는 신화는 생성과 해체의 길을 걷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 시대를 맞이했을 때, 그래도 일부는 새로운 여성 신화를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기 말년으로 접어든 지금, 오히려 그 반대가 되어버린 듯하다. 스스로 만든 신화의 성에 갇혀 그 어떤 비판과 토론도 용납하지 않는 완고함은 창의적인 감수성을 싹틔우지 못한다. 탈신화를 용납하지 않는 신화는 죽은 신화다. 탈신화와 신화의 과정을 오가며 장대한 서사를 완성한 작가 천명관은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사는 멈춰 섰고 시간은 흩어졌다. 새로운 것은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다. 숙주를 찾아 헤매는 에일리언처럼 작가의 영혼은 아득한 우주 공간을 떠돈다. … 이 시대에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아니면 불행한 일일까? … 그들은 묻고 나는 대답한다. 문답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작가는 그렇게 현재성의 압박을 견디며, 마치 커트 보네거트의 주인공처럼, 여러 시간대를 동시에 살아간다. 그래서 행복하냐고? 그렇다.” *환경과조경347호(2017년 3월호)수록본 일부
[CODA] 광장에서
2월 초, 결정 장애가 있는 난 고민에 빠졌다. J는 양양의 겨울 바다와 평창의 자작나무숲, 그리고 시골 찻집으로 이어지는(실은 양양의 회와 평창의 바비큐, 그리고 늦은 아침의 곤드레밥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1박 2일 코스를 제안했다. 보다 못한 K는 “여행은 다음에 가고 함께 광화문에 갑시다”라며, 나의 고민에 매듭을 지어 주었다. 그렇게 그 주 토요일 오후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번 겨울 연일 어이없는 뉴스가 쏟아지고 광화문에서는 촛불이 타오르는데, K와 나는 논문을 쓰겠다고 책상에 앉아 답답한 마음만 꾹꾹 누르고 있었다. 우리가 앉아만 있어서 되겠냐. 아니다, 우선은 연구를 마무리하고 2월이 되면 당장 광장으로 가자! 우리는 밥을 먹으며, 카톡을 주고받으며, 팟캐스트와 유튜브, SNS를 통해 해직 기자들이 또 살아남은 대안 언론들이 생산하는 뉴스를 체크하고 함께 분노하며 매일 나라 걱정을 했드랬다. 그런데 막상 2월이 되니, 날은 춥고 금쪽같은 토요일 오후에 하고 싶은 일도 여러가지였다. 하지만 나의 일을 남에게 맡겨 두었다는 부채감이 마음을 짓눌러 선뜻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어려웠다. 여하튼, 그 모든 유혹을 뒤로 하고 광장에 나가게 된 데는 사실 이번호 특집 주제가 ‘광장의 재발견’이니 현장에 가봐야겠다는 얄팍한 계산도 없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5시, 광화문역이 붐빌 것이라 예상한 우리는 시청역으로 갔다. 지하철 역사 내부부터 태극기와 성조기를 둘러 쓴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지상으로 나오니 서울광장과 주변 도로는 탄핵에 반대하는 어르신들로 듬성듬성 채워져 있었다. ‘종북’에 대한 맹렬한 적의를 표현하는 현수막을 보니 아득해졌다. 이 모든 일들이 일단락된 뒤에 우리 사회는 극단적으로 헤집어진 갈등을 어떻게 봉합할 수 있을까. 우리는 묵묵히 광화문광장을 향해 걸었다. 서울광장의 확성기 소리가 잦아드는 만큼 광화문광장의 마이크 소리가 커졌다. LED 초를 하나씩 사들고 집회의 행렬에 끼어 들어갔다. 광장에는 토요일 오후에 일시적으로 모이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광장의 초입, 이순신동상 주변에는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문화계 블랙리스트 논란을 계기로 세워진 임시 공공극장인 블랙텐트, 그리고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텐트가 캠핑촌을 이루고 있었다. 얼마 전 P는 광화문광장의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광장 양편에서 수시로 땅을 울리며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만약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 조성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점유하고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아마 그러한 광장 문화를 두려워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광장에는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모였지만 꽤 질서 있는 모습이었고, 공간 이용에도 나름의 규칙이 공유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로로 긴 광장 중간중간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지만 세종문화회관의 대형 계단과 해치마당에서 이어지는 탐방로 양옆의 계단은 광장을 향한 스탠드가 되어 그 역시 사람들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무얼 보고 있었을까. 사실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그 자체가 스펙터클이었다. 광화문광장의 횡적 구조도 흥미로웠다. 통행로로 이용되고 있는 양옆의 역사물길 넘어 광장 좌우 도로 한쪽은 차벽이 막아서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각 통신사 중계기 차량과 먹거리를 파는 노점이 늘어서 있었다. 공권력을 상징하며 시위대를 막아내는 차벽과 마치 축제를 연상하게 하는 노점이 공존하는 모습은 촛불집회의 복합적 성격을 드러내는 풍경이었다. 어쨌든 메인 행사는 무대에서 진행되고 스크린에 중계되고 있었다. 그리고 각 스크린을 중심으로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오와 열을 맞춰 빼곡하게 앉아 있었다. 우리도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서 촛불 파도도 타고, 구호도 외치고, 공연도 감상했다. 그러면서 어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단체 행동을 할 수 있는지 감탄했다. 아마도 ‘국민’학교 시절 조회와 운동회로 단련된 결과가 아닐까. 그날 광화문광장의 풍경은 집단주의의 유산에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의 문화, 그리고 월드컵 이후 길거리 응원 문화와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역 축제의 모습이 짬뽕된 것처럼 보였다. 시민의 힘을 확인하는 광장에서 집단주의의 유산을 발견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촌스럽지만, 일단은 이러한 부조화 역시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드디어 거리 행진이 이어졌다. 집회의 사회자는 몇 가지 행진 경로를 설명했고, 우리는 헌법재판소로 향하는 경로를 택했다. 기대했던 대로 자동차가 다니던 도로를 걷는 기분은 색달랐다. 특히 각각 가회동과 원서동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Y와 나는 감회가 새로웠다. 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때를 떠올리며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광화문광장 일대를 보행로로 만든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반면 Y는 과연 집회와 같은 비일상적 이용의 필요가 얼마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행진 행렬이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향할 무렵 슬슬 배가 고팠던 우리는 인사동 어귀에서 밥집으로 들어갔다. 바깥의 열기는 딴 세상 일인 양 고요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도로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PRODUCT] 대지개발 토양개량제 '대지지력정' 출시
국내의 조경 식재 시공 회사는 식재 공사 성공률을 높이고 하자를 방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대지개발은 ‘식재 공사 하자율 0%’라는 슬로건을 걸고 활동해왔고, 1983년 이후 300건가량의 대형 수목 이식 공사를 100% 성공시켰다. 이 같은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건 (주)대지개발이 자체 개발한 생명정, 생명토 덕분이다.식재 공사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생명정, 생명토는 친환경 유기질 토양개량제로, 특수영양 물질이 많아 조경 식재 시공 회사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국내 건설 시장의 불황이 조경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며 조경 분야도 저가 경쟁에 내몰리게 되었고, 이에 (주)대지개발은 성능이 뒤처지지 않으며 가격 부담도 적은 토양개량제 ‘대지지력정’을 출시했다. 기존의 토양개량제나 퇴비는 수목을 이식한 후 수목의 활착과 생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식물에 필요한 양분과 수분을 식물이 이용할 수 없는 상태로 공급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목 이식 공사의 특성상 제품이 지하부에 타설되고 흙과 혼합돼 사용되기 때문에 육안으로 수목 뿌리 부분의 생육 과정을 파악할 수 없다. 또한 부속도가 완전하지 않은 토양개량제의 사용은 수목의 고사로 직결된다.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한 토양개량제가 대지지력정이다. 순수 국내산 이탄을 주성분으로 하고 있으며, 해외에서 주로 사용하는 피트모스나 코코피트보다 월등히 뛰어난 보수력과 보비력을 자랑한다. 또한 식물이 섭취하기에 좋은 형태의 양분과수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인 ‘수화력’을 갖추고 있어 수목의 뿌리 활착과 신장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TEL. 02-832-3500 WEB. www.lifesoil.co.kr *환경과조경347호(2017년 3월호)수록본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