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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여주고 싶은 경관 ; 보길도 ;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찾아서
    고의 시가생활과 은둔생활의 중심지이자 조선사대의 중요한 정원 유적지인 \"부용동 정원\"이 자리 잡은 곳.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를 발견한 것은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6년, 그가 51세 되던 해이다. 그는 이 섬의 최고봉인 격자봉을 중심으로 섬내부의 평지와 산의 경계가 마치 부용꽃 같다 하여 부용동이라 불렀다. 부용동은 고산이 기거하는 낙서제를 중심으로 하는 위락공간이었다. 고산은 별서정원을 가꾸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다가 이곳에서 일생을 마친다. 세연지는 부용동 하구에 있는 약 5천㎡ 정동의 방대한 연못. 이 연못을 중심으로 고산의 정취어린 정원이 펼쳐진다. 이 공간은 고산의 가장 낭만적인 일과가 전개되던 곳, 그래서인지 보길도 내의 정원 유적중에서 경관 처리가 가장 화려하고 계곡의 물을 잘 이용하고 있다. 고산의 거처, 낙서제, 그 주위는 수림이 우거져 있으나 앞은 훤히 트여서 부용일 일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낙서제는 그가 늘 기거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였던 고산의 생활중심지이다. 낙서제가 들어선 곳의 배면은 바로 격자봉의 내룡이 입수가 되는 곳 즉, 용머리가 혈에 들어간 형국을 이루었던 곳이어서 건물은 북향을 이루는데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고산이 82세 되던 해에 동계 윗쪽에 세웠다는 곡수대. 현재 밭으로 변해있지만 당시 경관이 아름다워 고산이 휴식을 즐기던 곳이며 경원에 유배되었을 때에도 곡수대에 대해 노래한 것이 있다.낙서제로부터 정북쪽에 있으며 직선으로 1㎞거리에 있는 동천석실은 고산의 인공구조물 유적으로는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석실 아래쪽 연지에 물이 넘쳐 10m 계곡 밑으로 떨어질 때면, 남쪽에 있는 태양빛을 받은 물줄기는 마치 구름을 뚫고 하늘에 오르는 용의 모습같이 보였다고 전하고, 동천석실은 승룡대라 불리기도 한다. ※ 키워드 _ 고산 윤선도, 보길도, 정원 유적지, 부용동, 별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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