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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가 박경탁 Landscape Architect Park Gyoung Tak
    지난 호에서 예고했듯 ‘제2회 젊은 조경가’ 수상자인 박경탁의 작품 세계를 탐구하는 지면을 마련했다. 박경탁은 뚜렷한 설계 철학을 바탕으로 조명, 가방과 같은 생활 소품부터 정원, 건물 외부 공간, 도시 공공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선보여왔다. 특히 미국 실리콘 밸리 인근에서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온몸으로 경험한 그는 다양한 패브리케이션(fabrication)장비를 익혀 창작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이번 지면에서는 그가 체득한 만들기 기술로 구현된 프로젝트들을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펴본다. 제작 방식의 확장이 디테일뿐만 아니라 작품의 콘셉트와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특집을 열고 닫는 두 편의 에세이에는 생각과 만들기를 일치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그의 진취적 면모가 담겨 있다. 남기준의 인터뷰는 학창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박경탁의 궤적을 쫓는다. 그의 관심사가 변화할 때마다 한층 풍부해지는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박경탁의 추진력은 한계를 넘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벽에 부딪치면 이를 극복할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는 그의 이야기가 조경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긍정의 힘으로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진행 편집부 디자인 팽선민 자료제공 박경탁
    • 편집부 / 2020년01월 / 381
  • 춤추는 조경가의 성장 일지
    16년 전, 대책 없는 복학생이었던 나는 재학 중이던 조경학과의 당시 분위기에 이끌려 ‘제4회 늘푸른 환경조경설계 공모전’(이하 늘푸른 공모전)에 참여해 입선을 받았다. 친구들과의 뒤풀이에서 꼬드김에 넘어가 시상식에 참석했다. 그때 이유 모를 용기와 영감을 얻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지금 난 조경 설계를 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시상식에서 대상 수상자의 수상 소감을 들으며, 이유 없이 머릿속을 스쳐 간 생각 때문에 조경학과 친구들에게 내년 늘푸른 공모전에서 저 자리에 올라 꼭 이렇게 수상 소감을 말할 거라고 다짐하게 된다. “공부가 제일 쉬웠습니다. 수업에 충실히 임하고 예습, 복습을 철저히 했던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것 같습니다.” 매년 11월만 되면 9시 뉴스에서 전국 수석이 어김없이 전하던 소감의 핵심 구절이었다. 다음 해 늘푸른 공모전이 ‘제1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으로 바뀌었고, 난 대상을 받아 스스로 다짐했던 수상 소감을 말하게 된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어 수도 없이 연습했던 말이었다. 그 일이 조경가로서 내 성장의 시작이었다. 춤을 추며 조경을 하다 보니 대통령상을 받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고, O3스코프(O3scope)를 열고 유학 자금을 마련하려 노력하다보니 유명 건축가와 일할 기회도, ‘제1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 기쁨도 누렸다. 마침내 목표했던 곳으로 유학을 떠났고, SWA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서 일하며 디자인 디벨롭(design develop)과 디테일 설계에 마음껏 빠져 지낼 수 있었다. 사는 곳이 실리콘 밸리의 직접적 영향권이었던 덕분에 워터젯 커터(waterjet cutter), CNC 라우터(router)등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 등장한 다양한 패브리케이션(fabrication)장비를 익힐 수 있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1호(2020년 1월호) 수록본 일부
  • 여섯 가지 만들기
    해외에서 공간을 만들면 감리까지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상세한 도면과 3차원 정보 제공이 꼭 필요하다. 국가별, 공종별 기술력 및 자재 수급 현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동반되어야 한다. 중국은 한국이나 미국에 비해 식재비와 석재 수급비, 인건비 등이 월등히경제적이다. 비용을 절감하려 재료를 아끼다 오히려 추가 디테일이나 하자가 발생할 수 있다.기술력에 의지하는 디자인보다 원재료의 물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디자인이 아직까지 중국에서는 유용하다. 물론 최근 중국 대도시에서 진행되는 많은 프로젝트로 인해 중국 건설사의 시공력도 많이 높아졌다. * 환경과조경 381호(2020년 1월호) 수록본 일부
  • 한계를 넘어 실천으로 조경가 박경탁 인터뷰
    아직은 추위가 기승을 부리기 전인 12월의 초입, 가벼운 옷차림으로 서울숲을 향했다. 힙한 음식점과 빈티지한 풍경이 어우러진 인근 카페거리는 이른 시간부터 젊은이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 열기로부터 한 발짝 물러난 대로변, 오피스 빌딩 2층에 동심원조경이 있다. 각양각색인 오피스의 특색을 반듯한 콘크리트 벽으로 재단해 놓은 듯한 복도를 걷다 보니 익숙한 패널들이 우리를 반겼다. ‘경의선숲길’, ‘인도 허왕후 기념공원’, ‘이사부 독도 기념공원’까지. 새로운 질문거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미지를 뜯어보는 사이, 맞은편의 문이 열렸다. 며칠 전까지 치열한 설계공모와의 싸움에 임했던 박경탁 소장의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는 전투의 흔적이 가득한 전략기획실 대신 서재 앞 테이블로 우리를 안내했다. 염려와 달리 인터뷰의 물꼬를 트자마자 박 소장의 얼굴에 생기가 차올랐다. 그는 첫번째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먼저 말문을 열었다. 쏟아지는 이야기 속에 편집부가 포착하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이 가득했다. 오기가 빚어낸 열정 -‘제2회 젊은 조경가’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장님은 유독 공모에 강한 것 같습니다. ‘제1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2004)과 ‘제1회 대한민국 신진조경가 대상 설계공모’(2007) 대상 수상자이시기도 하죠. 당시 제1회 공모전의 대상을 연달아 거머쥐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모든 조경학과 학생이 설계에 관심을 갖고 공모에 참여하진 않는데요, 공모전을 열심히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군대 가기 전에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불렸습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김충식 교수님이 당시 저희 학교 조교로 계셨는데, 학과 수업에 관심이 없다고 절 꾸짖기도 했어요.” -학과 수업을 약간 등한시한 건가요? “등한시했다기보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모든 학생이 수업을 열심히 듣던 시절이 아니었어요. 다들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죠. 저 역시 기타도 배우고, 문선을 하는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안무를 만들고, 연습하고, 큰 축제에 공연을 올리고, 거리 공연도 하고, 이런 활동에 심취했죠. 동아리 활동에 지쳐 강의실 뒷자리에서 몰래 자기도 했고요.” -춤을 잘 추겠어요. “열정이 넘쳤죠. 그런 학생이 돌연 복학해서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니 아무도 안 믿었어요.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니 오기가 생기더군요. 교수님에게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공모전 소식을 들었어요. 당시 3학년이었는데 포토샵을 전혀 다룰 줄 몰랐어요. 늦게 배우기 시작했죠. 그 결과 ‘제4회 늘푸른 환경조경설계 공모전’(2003)에서 입선을 했습니다. 당시 친구들이 대상작을 보며 부러워할 때, 저는 내년에는 내가 대상을 받아 수상 소감으로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말할 거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죠. 실제로 일 년 뒤 ‘제1회 대한민국 환경조경대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소감으로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수상을 하니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어떤 자신감이 생겼어요. 포토샵이야 배우면 되는 거지, 감각은 어떻게 못 해! 친구들이 어디 가서 이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는데(웃음).” -이후에도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공모전에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마침 상금이 꽤 큰 공모전도 생기고, 여러 공모전이 열린 시기였죠. “2005년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주관하는 ‘제4회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상’ 공모가 열렸어요. 학교를 대표해서 제가 참여하게 됐는데, 살사 국제대회 단체전 수상 등 독특한 이력이 심사위원에게 흥미롭게 느껴진 것 같아요. 운이 좋았던 셈이죠. 우수인재로 선정되어 대통령 메달과 교육부총리 상장을 받고, 금강산 체험 연수도 다녀왔습니다. ‘우수인재’라는 타이틀을 얻으니 유학이 내가 가야 할 길처럼 느껴졌어요. 원하는 대학원에 합격도 했죠. 그때는 학비를 마련할 길이 있겠지 막연히 생각했는데, 없었어요. 결국 입학을 못 했죠. 일주일 정도 짧은 방황을 했어요. 그러다 일단 돈을 벌어보고 그때도 안되면 포기하자고 결심했죠.” -그때가 O3스코프(O3scope)의 시작점이군요. “유학을 준비하며 건축을 경험할 겸 건축사무소에 잠시 다녔어요. 그곳에서 휴학 중 일을 하고 있는 실력 있는 학생을 만났는데, 함께 작업할 기회가 많았어요. 학비 문제로 유학의 꿈이 좌절되고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 이 친구랑 함께해보면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맘 먹고 부탁했어요. 나를 위해 휴학을 계속해줄 수 있겠니? 이대로 유학을 포기하기 전에 직접 학비를 벌어 볼 생각인데 네가 함께해 준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터무니없는 부탁이었는데, 정말 절 위해 휴학을 하고 O3스코프에 함께해줬어요. 그 친구가 에이트리의 김상윤 대표에요. 그때 진 빚을 갚기 위해 기회가 될 때마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갓 졸업한 학생이 일을 수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우선 명함을 예쁘게 팠습니다. 꽃분홍 색지에 엠보싱 가공을 넣어 책갈피처럼 만들었어요. 이름은 작게 넣고요. 소장님들을 찾아가 명함을 나눠드리며 일 있으면 달라고 했죠.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학교를 막 졸업한 풋내기에게 무슨 일을 맡기겠어요. 그런데 운 좋게 당시 한국 조경이 성황이었어요. 다양한 현상공모와 턴키 PF가 쏟아져 나오는데 사람은 부족했죠. ...(중략)... * 환경과조경 381호(2020년 1월호) 수록본 일부 인터뷰이남기준 편집장 녹취·정리김모아 기자 사진유청오
  • 생각하는 일과 만드는 일은 분리될 수 없다
    처음 박경탁을 알게 된 건2010년 무렵의 일이다.하버드GSD를 갓 졸업한 그는 수많은 조경 회사가 탐내는 인재였다. SWA가 운좋게 그를 낚아챘고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다.그는2010년부터2015년까지5년 동안 우리 회사에서 일했다. 전도유망한 조경가였던 그는 리조트 커뮤니티, 복합 용도 개발, 주거 및 업무 공간 개발 등 다양한 범주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힘을 보탰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통해 그의 디자인이 가진 독창성과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경탁의 디자인 감각과 기술, 강한 호기심, 실험과 창조에 대한 열망은 그의 혁신적 디자인의 기조를 지키고 발전시켰다. 박경탁의 초창기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탐구하고 창조하는 일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생각하는 일과 만드는 일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작업이다. SWA에서 진행한 두 개의 프로젝트는 박경탁이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을 여실히, 또 뚜렷하게 보여준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베이징의 폴리 인터내셔널 플라자(Poly International Plaza)다. 대상지는 강변 녹지를 따라 놓인 오피스 단지다. 세 동의 타워(설계: SOM)로 구성되는데, 그 모습이 강가에 놓인 세 개의 조약돌을 떠올리게 한다. 타워 사이의 공공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전반적 정원 배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크기를 세심하게 조정해야 했다. 주차장, 지하 출입구, 공습 대피소, 환기 시설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이 공공 공간은 차량용 램프, MEP 구조물 등이 난립하는 번잡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공공 공간의 경관을 회복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SWA는 서로 연결된 일련의 랜드폼(landform)으로 경관을 훼손하는 시설물을 전략적으로 은폐하고자 했다.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가 필요한 경우 진출입구에 경관 벽을 통합시켰다. 또한 벽의 아랫부분을 잘라내거나 각도를 기울여 대상지 전역을 유연하게 흐르며 입체적 표면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랜드폼의 특성을 더욱 부각했다. ...(중략)... * 환경과조경 381호(2020년 1월호) 수록본 일부 제임스 리(James Lee)는 SWA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의 소장이다. 40여 년 간 대상지가 내포한 고유의 특징과 그곳만의 독특한 프로그램을 고려한 설계를 수행했다. 특히 아시아 신도시의 복합 용도 공간을 지역적 특성과 프로그램을 존중하며 현대적 감각으로 조성해왔다. 환경적 해법과 디테일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인상적이고 친환경적 공간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대표작으로 폴리 인터내셔널 플라자(Poly International Plaza), 베이징 파이낸스 스트리트(Beijing Finance Street), 난후 뉴 컨트리 빌리지(Nanhu New Country Villag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