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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도 늘 소중하게 느껴지는 공간을 조성하고자...

2000년 3월 2일, 대학원에서의 조경학 수업으로 조경과의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29살의 나이로 결혼을 불과 한달 보름 남짓 남긴 상태에서 조경으로 입문한 셈이었다. 학부 전공이 전자공학인 내게 사실대학원 수업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요구했다. 결국 조경 늦깎이로서 전공 교수님께 양해를 구해 학부생 수업을 청강하며 대학원 수업을 진행해 나갔다.
대학원 시작부터 지금까지 내내 한결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의 요지는 결국 내 인생의 전력에 관한 것으로 대학도 아닌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근무했던 사람이, 비전공 분야인 조경에 왜 입문했냐는 것이었다. 이 질문의 내면엔 국내의 조경 현실의 암담함 속에 돈키호테 같은 나의 등장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담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도 꿋꿋이 2년 반 동안 열심히 수학을 해서 조경의 맛이나마 볼 수 있었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4학기부터는 경제적인 이유와 진로에 대한 선택을 하기 위해 직장을 결정해야할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첫 번째 직장은 이원조경으로 진로를 정했다. 이원조경은 작은 회사였지만 설계에서 시공 그리고 관리까지 조경의 전 영역을 다 아우르는 회사였다. 내가 맡은 분야는 현장지원분야로 주로 관리와 시공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발생하면 설계에 참여해 의견 개진을 하는, 설계분야의 참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비록 짧은 근무기간이었지만 센트럴시티의 신세계 전면광장 리노베이션, 부산 신라대학교 진입부 조경 프로젝트 등의 공공정원과 성북동, 이태원 개인정원 몇 개소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매일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체득할 수 있었던 많은 점들은 나의 조경관 형성에 상당 부분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그 중 대부분의 조경인들이 등한시 하는 초화류에 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지속적인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서 각인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새삼 느낀다.
환갑을 넘긴 노년의 나이에도 자신의 작품에 시간을 쪼개서 하루에 한번씩 직접 확인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열정이 지금의 이교원이란 사람을 만들었구나라는 외경감을 갖게 했으며, 열정이란 것이 참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시공을 위해서 현장에 설계 요소를 반영하기에 앞서 주요한 패턴과 조형물, 글자 형태와 크기 등을 1대1 스케일 모델 제작과정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수정하는 선행과정은 설계와 시공의 간극을 좁히는 훌륭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비록 이 과정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역시 설계와 현장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현장에서 도면만 보고 시공함으로 인해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시공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필수적 과정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선진국의 조경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당연한 절차겠지만, 단견이건대 우리나라의 조경회사에서 설계와 시공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회사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설계와 시공의 이원화된 우리 조경계의 시스템 자체에서 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며 자신이 만드는 공간에 혼신을 다할 수 있는 조경가 부재야말로 보다 근원적인 문제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실 스케일의 모델 제작 과정으로 수정이 이루어진 것이더라도 실제 현장은 설계한 의도를 고스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특성과 문제점들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경우 최초 계획된 설계 의도와 이미지가 구현되지 않게 되고 대부분의 조경 회사는 손실비용에 대한 문제 때문에 특별한 교정 없이 진행해 나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조경가로서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을 고집하던 이원조경의 대표는 조금 달랐다. 손실비용을 무릅쓰고서라도 작품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재시공하는 과감한 결단력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모습은 내게 굉장히 신선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약간의 변칙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시공의 마무리 즈음에는 초본류와 석물 등 조형물의 위치를 정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어진다. 이 단계는 설계에서 고려할 수 없는 현장이 지닌 특성을 순간순간 기지를 발휘해 감칠맛 나는 공간으로 창조해내는 디자인센스가 요구되는데, 이 시점에서 경험적인 노하우와 폭넓은 견문이야말로 가장 큰 효자 노릇을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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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 : 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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