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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상이 걸어온 길 조경가 우정상
  • 장태현
  • 에코스케이프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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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우정상 교수(1988)

 

故 우정상 교수와 나는 양정고등학교 45회 졸업생 동기다. 게다가 홍익대학교에서 함께 건축을 전공했다. 


우리 두 사람은 한국원예란 회사에서 정원 관련 일을 하면서 조경에 첫 발을 들여놓게 됐다. 둘 다 건축을 전공했지만 우정상 교수가 먼저 조경 분야에 발을 들였고, 나와 조경 분야의 관계는 그를 통해 시작됐다. 


1969년 봄, 우정상은 4학년이 시작될 무렵에 한 친구의 소개로 종로구 파고다 빌딩에 위치한 한국원예를 찾았다. 그는 당시 설계실장으로 있던 정충식 선배로부터 정원(당시 조원) 설계와 시공에 대한 소개를 듣고 점점 조경 분야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우정상은 정충식 선배로부터 정원을 그리는 설계 도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바로 그날 오후부터 생소한 조경 분야의 스케치와 도면 작업을 도왔다. 건축을 전공한 터라 수목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표현기법이 학교 과제와 비슷해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우정상은 그렇게 정원 설계 분야로 입문하게 됐고 40여 년의 조경 인생을 걷게 됐다. 


당시는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추진되던 시기로 국책사업으로 고속도로 개설과 문화재 정화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조경에 대한 인식도 관공서를 중심으로 폭넓게 확산되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큰 시공회사는 장미원, 효자원, 한림원 정도가 있었는데, 조경설계는 공사를 수주하는 데 따른 서비스로 진행되다 보니 크고 작은 설계 업무의 양이 엄청났다. 나는 이때 우정상의 연락을 받고 한국원예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정충식 선배와 나, 우정상은 설계실에서 함께 일했다. 약 1년간 수많은 밤을 세워가며 작업을 했다. 설계용역비 없이 시공 위주로 일을 수주하고 그에 따른 설계를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일했다. 정충식 선배는 주로 평면도 작업을 하고 펜으로 정밀묘사를 했는데 그 실력이 대단했다. 그로부터 업무를 배워가면서 우정상은 주로 내역서 작업에 관심을 갖고, 나는 투시도 작성과 수채화 작업 및 컬러링에 관심을 가졌다. 


조경 일을 하면서 한동안은 건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우정상은 건축이나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을 통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의논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와 나는 조경에 뼈를 묻었다. 


조경도 설계가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우정상과 나는 조경설계가 건축설계와 다르지 않다고 봤다. 하지만 건축과는 다른 소재가 쓰이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수목 자체의 특성을 응용한 식재계획은 건축과는 또 다른 전문성을 요구했다. 또한 도시계획, 토목, 건축, 식물, 원예 등 다양한 분야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면에 매력을 느껴 우정상과 나는 지금까지 조경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조경설계 표현기법은 켄트지에 색연필로 투시도 형식의 조감도와 평면도를 그리는 수준에 불과했다. 건축을 전공한 우리는 실무를 하면서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지도 함께 고민했다. 나는 제도와 표현기법에 관심을 가져 이와 관련한 다수의 서적을 발간하면서 조경만의 제도 및 표현기법을 연구해 왔다. 우정상은 평생을 펜 드로잉으로 실무 일을 해 왔다. 공통점이 많아 서로를 너무나도 이해할만한 지음(知音)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우정상은 수많은 작업을 손으로 하다 보니 언제나 손이 연필 얼룩으로 지저분했다. 얼굴에 테이프를 붙이고 다니는 일도 많아 주변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약 40여 년의 시간을 조경설계 분야에만 매진한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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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건축소도. 우정상 교수의 흔적이 남아있는 작업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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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건축소도. 평생 수작업을 고수했던 우정상 교수가 사용한 제도판과 작업도구

 

혹자는 그를 설명하는 것은 ‘3줄’이라고 표현한다. 줄 담배, 줄 커피 그리고 드로잉 선(줄). 본인 월급의 1/3은 커피를 사 먹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커피를 유난히 좋아한 것은, 인생의 대부분을 조경설계에만 매진하며 바쁘게 살아오면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유일한 휴식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담배도 엄청 피웠다. 

그가 그린 도면의 선을 다 잇는다면 지구를 몇 바퀴는 돌지 않을까 싶다. 약 20년을 조경 실무자로서, 약 20년을 조경 교육자로서 지내오면서 그간 연필 드로잉만 해왔던 걸 생각한다면 과장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입에는 담배를 물고 한 손엔 커피를, 또 한 손에는 펜을 들고 있다 귀에 거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사고를 당했을 당시, 우정상 교수는 나의 건강을 크게 걱정했는데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지음을 잃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장태현 명예교수는 서울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설계 석사, 도시계획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부터 2008년까지 청주대학교 환경조경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길 따라, 터를 찾아』(도서출판 조경, 2009), 『조경제도·표현(재개정판)』(도서출판 조경, 2014) 외 조경 제도 및 표현 기법에 대한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우정상 교수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인연을 이어왔으며, 초창기 한국원예, 한국종합조경공사 등에서 실무를 함께하고 오랜 시간 조경의 길을 같이 걸어 온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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